[장면의 발견]매혹과 반발의 이중성

현기증 Vertigo (1958)
현재 미국의 가장 지적인 감독 중 하나인 우디 알렌이 잉그마르 베르히만과 함께 가장 존경하는 감독으로 히치콕을 꼽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이미 ‘맨하탄 미스터리’와 같은 영화에서 히치콕의 ‘이창’을 절묘하게 패러디한 바 있다. 우디 알렌의 근작인 ‘매치포인트’에는 히치콕의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이 하나 등장한다. 주인공인 야심만만한 크리스가 재벌의 딸과 결혼 후 과거 매제의 약혼녀였으며 그가 매료되었던 대상인 노라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다. 미술관에서 크리스는 그림을 보고 있는 노라의 뒷모습을 발견한다. 이 장면은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주인공인 퇴역경찰 스코티가 그가 미행하는 친구의 아내 매들린을 미술관에서 훔쳐보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매치 포인트’에서 크리스는 동물적인 매력을 지닌 노라에게 무작정 빠져들고, 그녀와의 밀회를 즐기다 파탄을 맞는다.

‘현기증’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스코티는 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를 미행하면서 그녀의 미스터리한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히치콕은 오로지 스코티의 시점 숏으로만 매들린의 모습을 담아낸다. 매들린은 이 시선 속에서 언제나 미스터리한 기운에 둘러싸여 있으며, 스코티로부터 멀리 떨어진 금지된 대상인 탓에 오히려 환상과 동경을 불러일으킨다. 스코티의 시점 숏은 곧 관객의 시선과 동일시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스코티의 심정과 강한 동일시를 일으키게 만든다. 이러한 시점 숏은 히치콕이 인도하는 비밀스러운 욕망의 세계로의 문이다.

‘현기증’에서 매들린은 스코티를 건전한 현실 세계에서 위험한 꿈으로 이끄는 존재다. 미술관에서 스코티는 넋을 잃고 그림을 바라보는 매들린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그녀에 대한 망상에 빠져든다. 히치콕은 언제나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시작해 인간의 이중적인 욕망이 그 현실성을 어떤 방식으로 파괴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세계에 부지불식간 침투해 들어오는 불가해한 상황을 그리는데 있어서 히치콕만한 솜씨를 보여준 감독은 이제껏 없었다. ‘매치포인트’에서 그러하듯 ‘현기증’에서 매들린은 스코티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매들린은 영화 중반에 자살하고, 실의에 빠졌던 스코티는 주디라는 여성을 만나지만 종국에 가서는 주디가 매들린을 연기했으며, 매들린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치콕은 스코티보다 관객이 먼저 이 사실을 알도록 함으로써 일찌감치 스코티와 관객의 동일화를 분리한다. 그리고 관객은 매들린에 대한 스코티의 집착이 불러오는 비극을 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현기증’은 한 남성의 불온한 판타지가 일으키는 비극에 관한, 그리고 주인공의 훔쳐보기의 쾌락에 은연 중 동참한 관객에 관한 매우 날카로운 텍스트이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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