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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입술이 살짝 붙었다 떨어지면서 느낌 좋은 동그라미를 만든다. 블루는 우울한 어느 날의 무드이기도 하고, 화창한 어느 날의 하늘이기도하다. 블루는 답답한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스며드는 공기의 냄새일 수도 있고, 유난히도 슬프던 그 때 내 볼을 타고 눈 밖으로 여행을 떠난 눈물의 맛일 수도 있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과감하게 잘라내는 낯선 거리의 여자. 남자는 그녀에게서 에너지를 발견하고 둘은 디스플레이어라는 커리어를 서로 발전시켜보고자 동거에 돌입한다. 한 공간 속의 딱딱한 남자와 열정적인 여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티격태격했으나 여자가 결혼 속으로 사라지고 남자는 아무 느낌 없는 듯이, 혹은 그냥 그렇게 혼자가 된다. 김현철, 이소라가 부른 이 영화의 주제곡 ‘그대안의 블루’는 이현승 감독이 작사했다. ‘시월애’까지 이어진 감독의 ‘멜로그래피’가 만족스럽다면, ‘그대 안의 블루’라는 같은 이름의 영화와 음악을 통해 ‘사랑은 아니지만 우리의 만남 어둠이 사라지는’ 지점을 잡아낸 시선은 놀라울 정도다. 그 여자 유림이 태연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해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남자 호석과의 만남이 사랑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일하는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받고 결혼생활을 뒤로 한 채 발신인 호석에게 달려간 것도 그를 사랑했다기보다, 잃었던 자신에 대한 반가움 내지는 고마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루, 어쩌면 아주 오랜 시간을 뒤적여 봐도 딱히 사랑이라 부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혹시나 하고 버리지 못했던 자잘한 시간들, 순간들, 웃음들, 울음들, 질문들, 대답들, 눈빛들, 감정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이라 미처 부르지도 못했고, 지금 와서 억지로 이름붙이기도 어색한 그 만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사랑이다. 사랑을 할 때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다 ‘모두가 사랑이에요’라는 좋은 게 좋은 것 식의 정의를 내리게 된 것은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별 앞에서 또 한번 세상 속에, 사랑 속에 던져진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 서로 간절하거나 미치지는 않았을지언정 사랑하였음으로 행복하였네라. 우리 서로의 기억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지는 아니하겠지만 너와 함께했던 조각의 기억을 모을 수 있었으니 됐다. 그러니 쿨하게 그대여, 이제는 안녕. 2006년 어느 이른 아침, 수빈과 영엽을 보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