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pecial] THE 78th ANNUAL ACADEMY AW

THE 78th ANNUAL ACADEMY AWARDS
환희의 순간들

두 카우보이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브로크백 마운틴’과 가수 쟈니 캐쉬의 삶을 열정적으로 담아낸 ‘앙코르’가 각각 8개,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두각을 드러냈던 제 78회 아카데미 시상식.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아카데미는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들로 눈길을 돌렸고, ‘크래쉬’가 작품상의 영예를 안았다. ‘몰아주기’ 없이 다양한 작품들에게 수상의 기쁨이 돌아간 것도 하나의 특징. 탄성을 자아낼만한 사건이 없어 실망한 영화팬들이 있는가하면 보수적인 아카데미 시상식의 ‘오픈 마인드’에 은근한 감동을 느낀 이들도 있었으니, 수상자에게는 분명 꿈을 거머쥔 환희의 순간이었으리라.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최대의 이변, ‘크래쉬’
지난해 주요 영화제의 주목을 받았던 ‘브로크백 마운틴’과 ‘굿 나잇, 앤 굿 럭’이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가운데 ‘크래쉬’의 수상은 최대의 이변이었다. ‘크래쉬’는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각본가 폴 해기스의 감독 데뷔작으로 산드라 블록, 맷 딜런, 돈 치들, 브랜든 프레이져, 라이언 필립, 탠디 뉴튼이 LA에 거주하는 서로 다른 인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의 차이가 신념과 행동의 차이가 되고 결국 갈등과 사고가 발생하고 마는데, 이 과정이 도발적이고 단호하며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수상 이후, 아카데미가 동성애가 아닌 인종차별에 손을 들어줬다는 해석이 나왔다. 아카데미가 이전의 보수 성향을 버리고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정면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허슬 & 플로우’의 주제곡 ‘IT’S HARD OUT HERE FOR A PIMP(포주로 사는 것은 힘들어)’가 주제가 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무대에서 처음으로 힙합을 공연했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다.
떨리는 손으로,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연기에 몰두하고 있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지켜본 팬이지만 남우주연상을 수상 하기위해 무대 위로 걸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로웠다. ‘부기 나이트’‘매그놀리아’‘펀치 드렁크 러브’‘25시’ 등의 작품을 거치는 동안 지나치게 유약한 캐릭터를 맡아 연기한 적은 있을지언정, 오스카를 손에 쥐었을 때만큼 순수하고 감격스러운 얼굴표정을 지었던 적은 없었다. 배우에게 ‘최고의 조연’이라는 타이틀은 찬사이자 그늘이기에, 수상 소감을 발표하며 어쩔 줄 몰라 손까지 덜덜 떠는 그가 감격스러웠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에게 이러한 환희를 안겨준 작품은 글 창작을 위해 살인범을 이용하는 작가 카포티를 재현한 동명의 영화다. ‘티파니에서의 아침을’의 작가이자 게이이고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던 그가 실제로 경험한 이 사건은 논픽션 ‘In cold blood’로 출간됐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소름끼칠 정도의 카포티 연기를 보여줬다고 평가받았다.
동양인 최초 아카데미 감독상, 이안
‘브로크백 마운틴’이야말로 지난해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이 영화는 퓰리처상 수상자이기도 한 소설가 애니 프루의 동명 단편을 시나리오 작가 래리 맥머트리와 다이아나 오사나가 각색하고, 대만 출신인 이안 감독이 연출하여 탄생했다. 결과는 세 개의 오스카였다. 음악을 담당했던 구스타보 샌타올라라가 음악상을 수상했고 각색과 감독상의 영광이 그들의 몫이었다. 수상소감을 통해 각색자와 감독은 서로에게 영광을 돌렸다. 특히 감독은 “사회에서 금지한 것이지만, 사랑 그 자체의 위대함을 알려준 잭과 에니스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덧붙여 그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을 확인시켜줬다. ‘결혼 피로연’‘센스 센서빌리티’‘와호장룡’을 통해 입지를 다져왔던 이안감독이지만 아카데미가 동양인에게는 한번도 개방하지 않았던 감독상을 내줄 것인가의 문제는 확실치 않았다. 아카데미는 다시한번 오픈마인드하여 이안 감독에게 오스카를 안겼고, 그는 마지막 수상소감을 모국어로 장식했다.
오스카를 드디어 내품안에, 로버트 알트만
이번 아카데미 공로상의 주인공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다. 그는 1957년 장편영화 ‘범죄자들’로 데뷔한 이후 50년이 넘는 창작의 기간 동안 미국과 할리우드의 가치관을 날카롭게 풍자했으며, 이와 반대되는 새로운 영화를 추구했다. ‘매쉬’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고, ‘플레이어’로 1992년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1993년에는 ‘숏컷’으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2002년에는 ‘고스포드 파크(사진)’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거머줬으나 유독 아카데미와는 인연이 없었다. 다섯번이나 고배를 마셔야 했던 아카데미에서 공로상을 받게 된 그는 오스카를 꼭 감싸 쥐고 명언이 될 수상소감을 남겼다. “영화란 모래성과 같은 것입니다. 모래성은 파도에 쓸려 사라지지만, 우리의 가슴속에 남습니다. 영화도 그런 것입니다.” 10년 전 30대 여성으로부터 심장이식 수술을 받아 앞으로 40년은 더 살 것이며 계속 작품 활동을 할 것이라는 여든의 노장에게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아니지만, 조지 클루니
“저에게 남우조연상을 주셨으니 감독상 수상자는 아니란 말씀이군요. (웃음)” 조지 클루니가 석유이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음모와 테러를 파헤치는 영화 ‘시리아나’로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말했다. 그는 이 작품에서 평생을 바쳐 헌신한 조직에 의해 배신당하는 CIA 요원 역을 맡아 몸무게 14kg을 늘리기도 했다. ‘시리아나’를 제외하고도 조지 클루니가 신경써야 할 여섯개의 부문이 있었는데, 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굿 나잇, 앤 굿 럭’이 노미네이트 됐기 때문이다. 연출작 수상의 기쁨을 맛보지는 못했으나 ‘가장 섹시한 남자’에서 연출력을 인정받는 감독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뤘다는 점에서 환희의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미녀에서 배우로, 리즈 위더스푼과 레이첼 웨이즈
애초 세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던 ‘앙코르’는 리즈 위더스푼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전부다. ‘앙코르’의 주인공 쟈니 캐쉬를 연기했던 호아킨 피닉스가 후보에 오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반면 짙은 갈색 머리의 준 카터로 변신한 금발의 리즈 위더스푼에게는 오스카가 안겼다. 기쁨에 들떠 수상소감을 말하는 모습이 여전히 사랑스럽기 만한 그녀지만 영화 속에서 대중들의 비난을 견뎌내며 꿋꿋이 살아내고, 사랑했던 싱어 송 라이터 준 카터의 강인한 눈빛을 현실의 대중들에게 각인시켰다.
데뷔 때부터 꾸준히 독립 인디영화에 출연하는 행보를 보였지만, 자신의 외모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방법이 없었던 레이첼 웨이즈도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제약회사의 음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권문제를 다룬 영화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케냐에 파견되어 결국엔 살해당하는 인권운동가 테사 퀘일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쟁쟁한 중견의 후보들을 물리치고 무대에 올라 조금은 겸허하게 “(자신이 연기했던) 그분들이 정말 훌륭하십니다”를 반복하는 그녀에게서 점점 더 깊어지는 배우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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