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Special] ‘망종’ 장률감독과의 만남

위로밖에 남지 않아요
‘망종’ 장률감독과의 만남 24절기의 하나로 씨앗을 뿌리는 시기이며 농번기의 최고 절정기라는 ‘망종’. 중국 변두리에서 김치장사를 하며 살아가는 최순희와 그의 아들, 이웃인 몸 파는 아가씨들의 삶에는 망종이 없는 듯 보인다. 세상의 저 밑바닥에서, 고독과 고통의 대지에서, 삶의 기쁨과 희망이 자라날 수 있을까. 장률감독이 다가와 무심한듯 파란 물뿌리개를 기울인다. 주룩주룩 위로가 흘러나오더니 새싹 하나. 그와의 만남은 작은 물방울 맺힌 새싹을 발아래 두고 가만히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장률감독은 재중동포 3세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아주 잠깐 교수생활을 하기도 했으나 곧 소설 창작의 길로 들어섰다. 어느 날 영화감독인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있다’고 장담을 하게 됐고, 그때문에 처음 만들게 된 영화, 단편 ‘11세’가 베니스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받으면서 영화감독으로의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첫 장편 ‘당시’는 하루 종일 집 안에만 있는 소매치기의 얘기였고, 두번째 장편이 ‘망종’이다. ‘망종’은 칸 영화제, 부산 영화제를 거쳐 프랑스브졸 영화제에 감동을 선사했고, 장률감독은 또 다른 영화제를 찾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영화 ‘망종’

대학내일 맨 마지막 장면을 보고 ‘고통과 위안이 겹겹이 쌓여있다’는 평에 동감했습니다.
장률 영화에서 대부분 마지막 신이 제일 중요한데, 그것이 계속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헌팅하러 갔을 때, 북경에서 한 40분 돼요. 처음에 간 장소가 최순희의 집이에요. 그 집이 내게 감동을 줬어요. 철길 건너서 대합실이 있고, 역 앞은 광장이고 먼데는 보리밭인데, 거기서 갑자기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어요. 그게 떠오르니까 주요 촬영지가 돼버렸어요. 헌팅은 적어도 며칠을 해야 하는데 “딴데 가서 하지 말고 여기서 하자” 했죠. 사람들이 ‘이 감독 뭐하자는 거냐. 어떻게 이렇게 쉽게 결정하냐’ 그래도 그냥 하자고. 마지막 장면을 보면 최순희의 뒷모습이 보이고 떠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뒷모습으로 나한테 다가오고 내 마음 속에 다가오는 거죠. 사운드 처리도 그렇게 했어요. 소리가 떠나가요. 가다가 어느 시점에서 계속 돌아와요. 그러니까 최순희는 다른데 간게 아니라 우리 곁에 살고 있다는 거죠.
대학내일 말씀하신 메시지나 장치들을 사람들이 굉장히 잘 이해하고 있는데요, 예상하셨나요.
장률 예상 못했죠. 그냥 내 마음, 감정을 따라가는 거죠. 관객들이 내 감정과 비슷한 거고. 관객이 그렇게 봐줬다면 좋죠.
대학내일 아들의 죽음은 조금 급작스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극의 최고조라는 점에서 이해를 했는데, 특별한 의도가 있으셨나요.
장률 영화의 모든 것이 의도죠. 우리 생활에서도 그렇게 사고 나서 죽는 사람 많잖아요. 최순희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의미죠.
대학내일 몸을 파는 젊은 여자 아이들이 한명씩 카메라 앞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있는데요, 참 많은 애정이 느껴졌습니다.
장률 그 친구들이 최순희의 이웃들이죠. 주로 역 옆에는 최하층의 사람들이 살아요. 몸 파는 아가씨들도 있고 최순희도 있고. 몸 파는 건 몸 파는 거고 이 사람들 다 깨끗해요. 인생을 살면서 할 수 없어 일 하긴 하지만. 그건 최순희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그 사람들을 보고 너무 아름다워 가지고…. 아름다운데 당하니까 마음이 아픈거죠.
대학내일 최순희와 김씨가 사랑을 나눌 때 어떤 때는 남자의 나체를 보여주고, 어떤 때는 껴안고 키스를 하다가 쓰러져 화면에서 사라져 버리는 남녀주인공들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옛날 영화 같아서 웃음이 나기도 하는데요, 직접 보여주지 않은 이유가 있으신가요.
장률 (웃음) 그것 찍으면서 웃었어요. 사람이 실제 연애를 하면 지금이든 옛날이든 어색할 때가 있어요. (웃음) 그 어색한게 나한테는 좀 아름답게 보여요. 그래서 거기 있던 사람들도 다 웃으면서 지금은 그렇게 표현 안한다는 거예요. 그래도 ‘아니 이렇게 하자’ 했어요. 생활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으면 둘이 웃잖아요. 관객들도 웃는거죠. 소리도 ‘펑’하고. (웃음)
대학내일 네, 정말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색감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입자가 거칠면서도 색상이 참 곱습니다. 처음부터 이러한 색감을 생각하셨나요.
장률 의도했어요. ‘당시’도 아주 건조해요. 북경에서 다 촬영했어요. 북경은 습기 없어요. 건조하다는건 사람들 마음, 삶이 또 건조하니까 그런 식으로 만들었죠. 유럽 쪽에서 어느 평론가가 질문하기에 반대로 질문했어요. 그러니까 건조한데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이 고독하게 느껴진데요. ‘그러면 나도 그런 의미에서 의도한거다’ 라고 답했어요. 카메라 움직임이 없이도 많은 걸 얘기하죠.
감독 ‘장률’

대학내일 감독님께서는 재중동포 3세십니다. 중국에 사는 조선족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또 ‘망종’의 최순희가 그렇듯이 조선족을 통한 감독님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해나가시는 걸보면 ‘특별히 하고 싶으신 얘기가 있는게 아닐까’라는 의문도 생기는데요.
장률 유년시절 때 정체성을 잡기가 힘들죠. 꼭 그런거 있죠. 할아버지의 고국, 자기 뿌리와 문화를 계속 찾게 되면서도 생활은 그게 아니고. 근데 그거는 뭐 모든 이민자들이 다 똑같아요. 그리고 특별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떠오르는 것을 만들어요.
대학내일 영화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좀 특별하십니다. 영화감독인 친구분과의 술자리가 시작인걸로 알고 있습니다.
장률 그 친구한테 먼저 보여줬어요. ‘잘 찍었다. 나는 안 찍겠다’ 해서 그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또 다른 사람이 ‘이런 거는 유럽 쪽에 큰 영화제에 보내봐라. 인터넷에 베니스영화제 있더라’ 해서 붙였어요. 근데 경쟁부분에서 오라니까 사람이 황당한 거예요. 그 때 그 소식이 없었다면 또 내 살길 갔을 텐데, 뭐든 잘한다면 그게 문제에요. 그 길로 빠지니까.
대학내일 소설을 쓰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률 소설을 쓰는 척 했죠. 지금 글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아요. 글을 지금 쓸 수는 있지만 영화와 글을 전혀 다르게 창작하거나 이전 소설과 전혀 관계없이 쓸 거예요. 소설 하나 내 놓는다 하면 영화와 연결 지어 그 질문 밖에 없어요. 전혀 다른 얘긴데 같이 얘기 되는게 싫어서 익명으로 내거나 할거예요.
대학내일 영화제를 다니시면서 유럽관객들을 많이 만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률 감정은 다른 민족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더 쉽죠. 어렵게 민족성 찾고 이런게 아니라. 칸에서 40대 여자가 영화를 보고 눈물이 글썽해가지고 일어나서 ‘이게 내 생활이다.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러는 거예요. 그럴 때 나도 감동하죠. 유럽은 예술이 일상화 돼서 보통 관객들도 영화 전문가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이런 스타일을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요. 한국이 영화가 잘 되고 있으니까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상품성 좋은 영화 나오면 나도 박수쳐요. 그렇지만 정말 진지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게 대화하는 시간도 가져야 되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도 멀지 않아서 이런 영화를 찾게 될 거라고 희망 가지고 살아요.
청춘 ‘위로'
대학내일 젊은 여자 아이들을 그린 시선을 보고 많이 궁금했었는데, 젊은이들 보면 어떠세요.
장률 나하고 다르죠. 나는 중년이니까. 하지만 나 젊을 적하고 똑같다고 생각해요. 젊은이들은 역사 어느 때나 똑같아요. 윗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다 불만족하는건 어느 시기나 꼭 그래요. 상호간에 눈치 볼 필요 없이 자기 멋대로 살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눈치 봐서 뭐해요. 젊은 사람들이 즐기는 스타일이 있는데, 그렇게 사는거죠. 말 듣는 채 하면서 자기 나가 할거 다하고. 젊다고 더 우월성 있는거 아니에요. 나도 젊어봤으니까 (웃음) 왜 저렇게 살까, 우리는 이랬는데, 이런거 다 필요 없어요. 눈치 보지 말고, 비위맞추지 말고, 나도 젊은 사람들 비위맞추자고 살지 않아요. 자기 책임은 자기가 지고. 젊은 사람들도 책임이 있고, 중년 노년도 책임이 있죠.
대학내일 작품 계획이 있으신가요.
장률 나도 청춘에 대한 영화를 꼭 찍을 거예요. 젊은 사람들 비위 맞추지 않고 눈치 안보고 내 생각대로 찍고, 보는 젊은 사람들도 비위맞추지 말고 자기 맘대로 보고. 그런데 사람들이 공통점이 있으니까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거죠.
대학내일 감독님의 영화는 위로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음 영화에서도 이 위로가 계속될까요.
장률 영화는 모르겠는데, 사람이 살고 있으면 위로는 꼭 필요해요. 사람 사는게 꼭 그래요. 위로를 자기 스스로도 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소통하고 위로를 주는거죠. 사실 위로밖에 남지 않는거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인생을 바라보는 기본 관점이 있다면, 이놈의 세상이 계속 별로 잘 되지 않아요. 세상이 좋게 된다면 크게 좋게 안돼요. 나쁘게 된다면 아주 많이 나쁘게 되고. 역사를 보면 계속 전쟁이 있고, 나쁜 일로 시작해서 아주 나쁘게 되요. 그래서 위로가 항상 필요해요.
대학내일 그럼 감독님의 위로를 기다려도 되겠네요.
장률 위로라는 것을 나도 찾으며 기다리겠죠.
대학내일 아르헨티나 영화제에 가셔야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참석 예정인 영화제가 있으신가요.
장률 꼭 한달에 두 번씩 영화제 갈 일이 있어요. 참석하지 못하는 것이 많지만 시간이 나면 가고 계속 돌고 있어요.
대학내일 그런 일정이 힘들진 않으세요.
장률 힘들어요. 그게 제일 힘들어요. 힘이 드는데 관객과의 소통, 그것은 어떻게 보면 감독의 책임 아닙니까. 대화나 소통을 한다는 것. 그래서 가는 거죠.
대학내일 계속 영화도 보고 영화제 소식도 기다리겠습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 사진 임민철 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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