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α] 모두가 꿈꾸지만 존재하지 않는 곳
| 이상향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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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한 살 더 먹고, 한 걸음 더 걸을 때마다 현실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느끼던 발끝의 탄성은 줄어들고 이제 나의 걸음은 거의 땅에 붙은 듯 느껴졌다. 그러나 딱딱한 지구의 표면에 붙박인 지금도 여전히 이상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안정된 직장, 일정한 수입 같은 것 또한 하고 싶던 일, 자유로운 삶 대신 꿈꾸게 된 제 2의 이상인 것이다. 하지만 과연 이뤄질 수 있을까. 치기어린 꿈들이 은연중에 불가능으로 굳어졌듯 이것 또한 이룸과 동시에 서서히 매력을 잃지 않을까. ‘빅 피쉬(사진)’의 에드워드 블룸이 발견한 스펙터 마을도 끝까지 매력적이진 못했다. 그가 온갖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오싹한 숲을 헤치고 아름다운 그곳을 발견했을 때, 단번에 이상향임을 알았다. 신발조차 벗어버린 마을 사람들은 흔들의자에 앉아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달콤한 물을 마시며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파이를 먹는다. 그러나 12년째 단 세줄 밖에 쓰지 못한 시인을 보는 순간, 에드워드는 확고히 깨닫는다. 나태해져 버린 이상향의 의미를. 편안해지고 행복해져서 안주해버릴수록 사람은 자신의 의미조차 잊는다는 것을 알아챈다. ‘스텝포드 와이프’의 스텝포드마을도 남성들에게 이상적 공간이었다. 금발머리의 푸른 눈을 하고서 바비 인형같은 미소를 짓는 아내가 있다. 하지만 결국 그녀들은 로봇에 불과했듯 상상하던 것에 일치하는 유토피아는 거짓이 아닌 한 끝내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비치’에서 낙원의 섬을 찾던 리차드가 ‘낙원을 믿지만 그것이 찾는다고 발견되지 않는 곳임을 안다’고 한 것처럼 ‘유토피아’나 ‘무릉도원’같은 이상향을 그린 단어들은 ‘아무데도 없는, 인간은 찾을 수 없는 곳’이란 의미를 품고 있다. 결국 진정한 이상향은 없다. 그것의 실체를 목격한 뒤 대체된 또 다른 낙원을 꿈꿀 수는 있을지언정 모든 것이 완벽한 곳은 존재할 수 없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그곳,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이상향을 꿈 꿀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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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