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포기하지 않는다면, 추억들도 겁낼 것 없어

금지옥엽 金枝玉葉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것에 무심한듯했던 부모님이 기척도 없이 방문을 열었다. 나는 전화벨 소리에 반쯤 깨서는 인도에 다녀왔다는 친구와 통화 중이었다. “야, 뉴스에서 장국영이 죽었댄다.” 벙찐 채로 걸어 나간 거실 텔레비전에서 그가 묶었던 호텔이며, 자료화면들이 스쳐지나갔다. “어머.” 충격보다는 공허, 허무에 가까웠다. 장국영은 영화배우라기보다 예술가에 가까웠다. 거리감이 느껴진다는 까닭에 그의 팬을 자청하지 않았던 나이지만 찬란했던 홍콩영화의 한 때를 추억하려고 애쓸 때마다 만우절에 죽어버린 그가 떠오른다. 그리고, 4월이 시작될 때마다 장국영의 영화와 각종 홍콩영화들로 가득 메워져 있던 동네 비디오가게 한 벽면이 떠올라 코끝이 슬쩍 시큰하다.
슬픈 추억이 다스려질까 하는 기대에 기쁜 기억을 만들어보기로 한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소심하게 뒤적이다가 ‘금지옥엽’을 꺼내들었다. 그의 영화 중 드물게 슬프지 않은 영화였다. 비틀즈의 ‘Twist and Shout’ 를 열정적인 라이브로 선보이는 장국영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에서는 끝날 때까지 또 몇 번의 라이브가 펼쳐진다. “변화무쌍한 한 평생동안 묵묵히 사랑이 찾아오길 기대하지. 몇 개의 길 모퉁이를 돌아도 매번 실망하고 말았어. 이별한 후에도 여전히 사랑의 로맨스를 갈망하는 건 달갑지 않았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긴 밤 공허한 바람에 실려 오는 추억들도 겁낼 것 없어. 바람 속에서도 웃으며 노래하지. 널 만나게 된 걸 감사해.” 부부싸움을 멈추게 하려고 시작한 ‘금생금세(今生今世)’이건만 가사가 너무 애틋하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원영의와 유가령의 듀엣곡 ‘미래안거(眉來眼去)’가 아련하게 흐르다가 가장 유명한 장면이 등장한다. 원영의를 피아노 의자 옆에 앉히고 부르는 ‘추(追)’. “아름다운 모습은 환상 같기도 하고 거짓 같기도 해. 누구도 인생의 진정한 즐거움을 알 수 없겠지만 난 사랑이라고 말하겠어. 성공도 실패도 모두 너보다 중요하진 않아.”
남장을 한 가수지망생을 사랑하며 내적갈등을 겪는 매니저를 연기했던 장국영은 ‘금지옥엽’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랑노래를 부른다. 장국영은 예술가이기보다 사랑을 노래하는 사람이었고, 홍콩배우이기보다 열심히 만들어졌던 홍콩영화 그 자체였다. 나를 대신해서 열정적으로 사랑을 하고, 삶을 살았던 장국영을 잃은 것이 이제야 많이 슬프다. 그가 줬던 기쁜 기억들이 슬픈 추억을 더 슬프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의 노래처럼, 추억들도 두렵지 않으리라.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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