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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α]‘욕’을 하자
| 욕설 발화의 욕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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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목부터 은어였던 ‘정글쥬스’를 다 보고난 후 확실한 결론이 내려졌다. 조폭영화든 양아치영화든 욕설로 이뤄진 대화를 똑바로 전달하지 못하는 영화는 별로라는. 각종 은어들을 메모까지 해서 모르는 것 없다는 인터넷 검색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사를 알아듣지 못해 ‘정글쥬스’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넓은 강을 씁쓸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욕설을 ‘예의 없음’ 혹은 천박한 말이라 치부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욕에 대한 애착, 이 영화에 가득한 욕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욕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쉽게 생각했을 때, 찬미의 말이 존재하는 세상에 그 반대인 욕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상하지 않나. 찬미의 말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면서 욕은 가려서 해야 하는 까닭이 있나. 물론, 나도 모르게 그 까닭에 휘말려 인디밴드 런캐럿의 ‘시발놈아’나 그린데이의 ‘아이 헤이트 유(I Hate You)’, DJ DOC와 에미넴의 노래 등 욕이 난무하는 노래들을 들으면서 발화의 욕구를 대신할 때도 있다. 욕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지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맥 라이언이 귀엽지 않게 등장했던 ‘인 더 컷’을 추천한다. 작문선생님인 프래니는 속어집을 만들기 위해 온갖 욕설들, 은어와 속어를 수집한다. 프래니가 속어집을 만들고자 하는 것, 이것 또한 발화의 욕구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은 것과 같은 이치다. 세상이, 삶이 어떠한 것인지 정확히 묘사하고 표현해서 그 이면에 자리 잡은 분노, 불만족을 직면하고 함께 털어버리는 것이다. 발화의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스파이크 리 감독의 ‘25시(사진)’ 마지막 장면에 주목하자. 한 마약 판매범은 7년형을 앞두고 하루 간의 자유를 허락받는다. 그러나 그 시간은 망가져버린 자신의 삶과 죄책감을 곱씹게 하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노튼이 화장실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을 노려보며 긴 독백으로 내뱉는 욕은 마지막 자기변론이자 면죄부이고 스스로에게 내린 사형 선고이다. 발화를 끝낸 그는 희망을 꿈꾸고,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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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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