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프레임의 좁은 공간과 찰칵하는 셔터스피트의 멈춤이 답답해 사진 배우는 것을 관뒀다. 그러나 여전히 매력적인 것은 셔터스피드를 늦추거나 조리개를 많이 열어 자연광을 그대로 사진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야경 속에 펼쳐진 오렌지, 청록, 붉은 색깔의 불빛들. 이 불빛들이 길거리 하수구 뚜껑에 반사되어 뭉근하게 회색빛 아스팔트를 물들이는 풍경. 레몬색, 상아색, 샛노란색 햇살이 눈앞에서 부서지는 순간. 빛이라는 것은 만물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어둠을 걷어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해주고, 거대하고 무표정한 빌딩 숲 안에서도 슬픔과 기쁨 애틋함과 설렘을 발견해 낸다. ‘미국 영화는 왜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번창했을까’라는 질문을 따라가 보자. 최초의 미국 영화사들은 주로 뉴저지와 뉴욕에 자리잡고 있었다. 영화산업의 번창으로 영화제작이 활발해지자 제작자들은 좋지 않은 기후로 인한 방해를 없애려 적당한 지역을 물색했다. 로스앤젤레스의 맑고 건조한 날씨는 거의 일년 내내 야외촬영을 가능하게 했고, 1910년 자연광을 담아내고자하는 노력이 현재의 할리우드를 태동시켰다. 인간이 자연광, 세상이 만들어내는 빛을 쫓는 이유는 그것이 ‘생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아기가 자궁에서 빠져나와 분만실의 조명을 보는 것을 시작으로 어두운 밤 형광등을 켜둔 채로 꿈나라에 가는 소녀, 소년의 때를 지나, 캄캄한 골목 가로등 아래에서 어둠을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기까지, 인간의 몸은 필름이 되어 빛을 민감하게 흡수한다. 카뮈의 ‘이방인’에서 살인의 동기가 됐던 강렬한 태양은 이 생의 욕구에 대한 실존적 성찰을 가능하게 하고, ‘빠삐용’ ‘쇼생크 탈출’ 같은 감옥영화들에서의 한줄기 햇살은 가장 쉬운 예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