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미치게 하는 광기와 삶을 방관케 하는 권태로움은 일상적인 교차를 반복하지만 예민한 예술가들에게 있어 그 괴리감은 자신의 죽음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그 소리 없는 다툼을 이기지 못해 요절한 영혼들 중 너바나의 멤버였던 커트 코베인에 주목했다. 오로지 주인공을 위해 다듬어지는 보통의 전기 영화와는 달리 ‘라스트 데이즈’의 블레이크(마이클 피트)는 누구나 대입가능하다. 커트 코베인에게 착안했으나 정작 그 없이도 가능한 이야기, 그래서 더욱 커트 코베인의 ‘마지막 날들’에 가까울 영화는 숲속을 방황하는 한 남자와 함께 시작된다. 뒤엉킨 머리칼과 퀭한 눈동자,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목적도, 의도도 없는 걸음의 끝에 당도한 자신의 집. 그곳에서 친구들도, 전화벨도, 방문자도 침입할 수 없는 자신만의 영역에 빠진 채 헤어 나올 수 없는 삶의 마지막을 산다. 모든 개입을 뿌리친 주인공처럼 영화도 침범받길 원치 않는다. 감독조차 주관성은 비워내고 무심하리만치 멀찌감치 떨어져 담는다. 교차 편집되어 동어 반복되듯 등장하는 동일한 신이 많지만, 확고한 이해를 돕기보다 혼란스런 마약에 취한 블레이크의 머릿속 사고처럼 단편적이고 무미건조하다. 모든 화면은 그렇게 불친절한 영상의 교합이며 그것을 하나의 묶음으로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오히려 자유자재의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모르겠어, 모르겠어’를 연발하는 그의 마음을 도리어 알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쓸쓸할 수밖에 없는 ‘헛배 부른’ 자신과 타인의 삶에 대한 동정심이 인다. 상영시간 내내 사라질 줄 모르는 소리는 그것을 동조한다. 커트 코베인을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반면, 단편적 사운드는 화면을 철저히 지배한다. 블레이크의 머릿속을 울리는 끈질긴 종소리, 물 흐르는 소리, 초인종 소리, 전화벨소리 그리고 그의 중얼거림까지. 그것들은 무심한 영상의 내면에 숨겨진 관심의 갈구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마이클 피트는 좀처럼 정면을 바라보지 않지만 잠깐 스치는 그의 시선으로 숨겨진 소통욕구가 충분히 와 닿는다. 그래서 기타소리에 맞춰 울려 퍼지는 애처로운 노래를 잊을 수 없고, 결국에는 꽂혀있던 너바나의 음반을 다시 집어 들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