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도시형 로맨스여, 안녕

‘시티즌 독(Citizen Dog)’의 팟과 진

도시는 삭막하다.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심한 공해로 제대로 마음을 열기가 무서운 곳. 돌아보면 걸어온 길들은 무채색의 회색 길들이고 딱딱한 아스팔트이고 누군가 머리를 부딪쳐 죽었을지 모르는 차가운 땅이다. 그런데도 층층이 집을 지어 꾸역꾸역 들어가 사람들은 살고 있다. 숨을 쉬고 사랑을 하고 밥을 먹으며 살고 있다. 도대체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굴까?
시골청년 팟은 취직하기 위해 도시로 상경한다. 도시는 형광의, 어색한 핑크로 물들어 있고 끊임없이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도시에서 잠 못 이루는 팟은 할머니가 말한 것처럼 엉덩이에 혹시 뿔이 나지 않을까 염려하는 순수청년. 그러던 팟은 자기만의 세계에 푹 빠진 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눈길 어디를 돌려봐도 오직 그녀의 얼굴만 보이는 팟은 진을 위해 택시기사가 된다. 하지만 진은 팟을 친구이상의 감정으로 대하지 않는다.
답답하고 단조로운 생활 속에 마음에 드는 노래 한 소절처럼 팟을 설레게 한 진은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진의 마음을 얻으려는 팟의 노력은 소극적이거나 내성적이다. 마치 끊임없이 변하지만 무차별한 도시의 모습처럼. 하지만 팟은 ‘포기’란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처럼 ‘포기’를 꿈꾸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팟이 원하는 건, 그녀의 사랑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빈 페트병을 집착적으로 모으고, 뭔지도 모르는 글자로 적힌 흰 책을 병적으로 들고 다니는 그녀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을 이해 받는 것이 바로 외로운 도시인 팟이 할 수 있는 일이 셈이다. 진에 대한 감정을 무던히 읽어내려 가던 팟의 독백은 메말라 있다. 그것이 오히려 감정을 과잉을 걷어낸 에스프레소 같은 응축된 진심으로 느껴진다.
흔히 도시 속 연애는 ‘세련됨’을 바탕으로 한다. 멋진 스포츠카와 높디높은 빌딩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한 로맨스. 멋진 수트의 왕자님이 등장하고, 럭셔리하고 패셔너블한 드레스를 입은 신데렐라가 도시를 더욱 멋지게 만든다. 마치 그렇게 멋진 사람들만이 도시에 살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될 거라고 주문이라도 외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티즌 독’은 다르다. 아주 낮은 곳에서, 아주 소박한 곳에서 사랑이 물처럼 흔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렇다고 신파적이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사랑이 마음을 진정시킨다. 아직도 도시에는 로맨스가 아닌 사랑이 가능하구나 하고.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