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업]룸 투 렌트

Room To Rent
감독 칼레드 알-하가르
출연 세이드 타그마오우이
줄리엣 루이스
장르 코미디
시간 95분
개봉 5월 11일

Synopsis
알리(세이드 타그마오우이)는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무작정 런던으로 향한다. 주방보조, 밸리 댄스 강사, 사진모델, 웨이터 등을 전전하며 열심히 살아가던 그에게 ‘비자 만기일’은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다.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채 만료일은 다가오고, 위장 결혼비로 보탠 돈은 친구 녀석에게 속아 다 털렸다. 망연자실한 알리에게 친구 마크(루퍼트 그레이브즈)는 위장 결혼을 구실로 쇼걸 린다(줄리엣 루이스)를 소개하고, 알리는 그녀에게 첫 눈에 반한다.

Viewpoint

이방인은 서럽다. 타지의 낯설음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생활은 팍팍하고 정부는 어서 내 나라에서 나가라며 등을 떠민다. 이렇게 저렇게 축적되어 쌓인 불만은 제멋대로 분출구를 찾아버린다. 뉘앙스가 조금 다르지만, 이러한 문제를 전방에 제기하며 현실의 모순을 가감 없이 보여줬던 영화로 켄 로치의 ‘빵과 장미’가 있었다. 이주 노동자들과 그들을 압박하는 권력과의 투쟁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러한 영화가 한 편에 있다면, 다른 한 편에는 ‘룸 투 렌트’처럼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영화도 있다.

그러나 정작 영화는 포스터만큼 자극적이거나 로맨틱한 신파의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짝’ ‘장미와 콩나물’ ‘현정아 사랑해’ ‘아줌마’ 등의 드라마로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냈던 안판석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룸 투 렌트’는 참 슬픈 이야기다. 선한 눈망울의 꿈 많은 이집트 젊은이가 가졌던 ‘브리티시 드림’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에 의해 차례차례 깨진다. 시나리오는 보이는 족족 퇴짜 맞고, 운 좋게 맺었다 싶은 영화 계약은 알고 보니 3류 포르노 영화를 제작하는 조건이었다. 믿었던 친구는 사기꾼인데다가, 밸리 댄스를 배우는 중년의 여성은 탐욕스런 시선으로 청년의 몸을 훑는다. 그는 타자기와 금붕어가 든 어항을 허리에 끼고 돌아다니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러다가 마크의 소개로 만나게 된 린다는 그에게 여신 같은 존재다. 그녀는 술집에서 쇼걸로 일하며 남자들에게 윙크를 날리고, 마릴린 먼로스러운 복장으로 몸을 흔들며 콜 포터의 달콤한 노래 ‘마이 하트 비롱스 투 대디(My Heart Belongs to Daddy)’를 부르는 백치미 가득한 여자다. 하지만 순진한 알리는 위장결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이것마저 신통치가 않다. 린다의 비밀을 알게 된 그는 비자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면초가 상태에 빠지고, 자포자기 상태의 알리는 린다의 충고대로 집을 옮긴다. 그러나 이쯤 되면 끝까지 왔겠다 싶은 추측을 뒤엎고 새로운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여기저기서 마주쳤던 하얗고 조그마한 몸집의 할머니 ‘사라’는 어릴 적 너무나 사랑했던 이집트 애인을 못 잊고 그와 헤어진 충격으로 눈까지 멀었다. 그녀는 알리가 죽은 애인의 환생한 모습이라 굳게 믿으며, 사랑을 고백한다. 비자 때문에 임시방편으로 결혼을 약속하는 알리는 사라와 함께 살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부자 할머니와의 결혼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는, 신데렐라보다 더 한 이 젊은이의 성공 스토리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결혼 제도의 비합리성을 절묘하게 꼬집는다. 자칫하면 극적으로 격하게 진행될 뻔했던 외국인 체류 문제는 감독의 유머러스한 연출로 훨씬 쉬워졌다. 비단 외국인 문제에 국한시키지 않더라도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삶에 찌들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손해를 입히는 사람들이다. 삶을 따뜻하게 보는 감독의 가치관 때문인지 ‘룸 투 렌트’는 알리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피엔딩이다. 이 얄밉지만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은 각자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배경이 런던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영화인만큼 동양적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특히 줄리엣 루이스의 백치미 변신은 굉장히 인상적이다.

찾아보니 많다, 위장결혼 커플!

서로의 이해관계로 인해 음지에서 조용히 이루어지는 위장결혼은 그 소재의 특이성으로 인해 많은 영화의 소재로 활용됐다. 게이인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차마 소개할 수 없어 엉뚱한 여자와 위장 결혼하는 이야기를 담은 이안 감독의 ‘결혼 피로연’, 법적으로는 결혼했지만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남편을 만나지 못하는 ‘파이란’의 중국 여인, 그린카드와 아파트를 얻기 위해 위장 결혼을 약속하는 ‘그린카드’, 잘생긴 수영선수의 위장결혼 프로포즈에도 날아갈 듯 기분 좋은 추녀 뮤리엘의 ‘뮤리엘의 웨딩(사진)’까지. 같이 살면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다고, 위장결혼이 로맨스 영화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것을 보면 사랑 없이 성립된 관계라 해도 그리 안전하지만은 않은 듯. 홈피 cinecube.net/cine/roomtorent

A 소외된 자들의 유쾌한 일탈! (영엽)
B+ 이집트식 유머로 보는 '인생지사 세옹지마' (수빈)

장영엽 학생리포터 schkolad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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