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무수한 우연에 근거한, 그토록 운명적인 사랑

‘온리유’의 헤이스와 ‘프라하의 봄’의 테레사

사랑하고픈 이의 가장 강력한 로망 중 한 가지는 ‘운명적 상대’입니다. “그와 나는 운명이었어.” 떨리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녀의 로망은 꽤 견고한 것 같습니다. ‘온리유’의 헤이스도 그러했지요. 멀쩡한 약혼자를 두고 오직 이름밖에 모르는, 운명적 상대라 정의 내려진, 데이먼을 찾아 나서니 말이에요. 그녀에게는 ‘이름’이 운명을 알아보는 키워드였어요. 운명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제각각의 키워드가 있기 마련인데 ‘프라하의 봄’에서 테레사의 운명키워드는 숫자 6입니다. 토마스가 계산서를 달아달라고 한 방 번호가 6번이었고, 그녀가 전에 살았던 프라하의 집 번호도 6번이었죠.
하지만 말이에요, 그들이 필연적 낭만을 즐기는 동안 심술이 돋습니다. 사랑 외의 영역에 상주하는 사람의 제일가는 로망은 사랑에 눈먼 이들이 현실을 깨닫는 것이거든요. “운명 따윈 착각 일뿐야”라고 그녀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습니다. 들은 체도 않으니 그들이 운명적 사랑이 진행 중인 ‘프라하의 봄’의 원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인용해 반박한다면 조금은 귀 기울여 줄까요. 바람둥이 토마스조차도 운명적인 사랑이라 믿었던 테레사, 그는 7년이 흐른 뒤에 깨닫습니다. 그들 사이에 여섯 번의 우연이 필요했음을. ‘우연히’ 테레사가 사는 도시에서 특이한 뇌질환이 발견됐고, ‘우연히’ 과장선생이 신경통을 앓았으며, ‘우연히’ 테레사가 일하는 호텔에 묵었고, ‘우연히’ 기차 출발시간까지 여유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녀가 일하는 시간이었고, ‘우연히’ 그가 앉은 테이블담당을 테레사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토록 우연에 바탕을 둔 사랑’을 했던거죠. 하지만 반박하고 나니 논거가 조금 빈약해보입니다. 아마도 밀란 쿤데라가 말했듯 ‘마술처럼 신비스런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기 때문이겠죠. “그 수많은 우연을 거쳐 서로를 만난 것이 결국 운명의 증거가 아니냐”고 친구가, 테레사가, 헤이스가 따지는군요.
에효, 이토록 집요하게 맑은 날씨는 그로테스크한 반운명론자가 살기에는 너무도 잔인합니다. 그 날씨 속에 로망을 이룬 무수한 커플들이 비수를 꽂는군요. 아마도 하나 아닌 반쪽이야말로 정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가봅니다.

이수빈 학생리포터 fantastic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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