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rd League] Second chance

처용의 다도
감독 정용화 시간 30분 년도 2005
사랑은 독점적이다. 하지만 독점금지법이 없는 탓에, 연애시장에는 끊임없이 갈등이 솟아난다. 어디부터 사랑이고 어디까지 사랑이 아닌지 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자기를 지키는 것조차 어렵다.
학창시절 ‘처용’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도 의아했다. 아내가 외간 남자와 누워있는 것을 보았는데도 ‘두 짝은 내 것인데 다른 두 짝은 누구 것인고’하며 태평한 소리나 하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것일까. 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욕망이 구체화되면서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대한 지독한 분노와 열정은 자기초월적인 성질을 갖기 마련이고 그 순간의 인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에 대해. 그는 어쩌면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처용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처용의 다도’는 바람난 아내의 외도를 지켜본 영민(박원상)이 겪는 이야기다. 젊은 애인과 사랑에 빠진 아내를 기어코 확인한 영민은 조용히 분노한다. 아내를 향한 짜증과 무심한 일상 속에 가시처럼 담긴 배신의 분노. 마치 천천히 목을 죄듯 영민과 아내를 갈라놓는다. 차를 구하러 들른 절에서 처용의 가면을 얻은 영민은 처용의 가면 속에서 과거의 자신과 만나게 된다. 영민은 아내의 외도에 불같이 화를 내기 보다는 조금씩 삐걱이는 문처럼 차츰 분노를 드러낸다. 치밀하게 관찰하고 심지어는 물증까지 잡아내는 그는 이미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
처용이 형상화하는 것은 어쩌면 ‘세컨 챈스’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가능성. 우린 종종 그 가능성만으로 위로를 받곤 한다. 스포츠 영화들이 그리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세컨 챈스’다. 절망에 빠지고 끝을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진 인간들이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두 번째 기회에 모두 열광한다. 처용은 스스로에게도, 아내에게도, 그리고 제 3자에게도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시 사랑할 혹은 무너질 수도 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말이다.
유희정 프리랜서 elegys@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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