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라는 이름의 '다크 초콜릿'
상성 & 올드보이


'복수'의 양면성을 초콜릿에 비유하고 싶다. 카카오 원액의 쓴 맛에 설탕을 더해 고체화 한 것이 초콜릿이라면, 절망과 분노라는 쓴 기억들에 허황된 위로를 입혀 내놓은 것이 복수다. 처음의 달콤함에 한 입, 두 입 베어 무는 동안 이는 상하고, 상처는 더욱 더 벌어지기 마련. 복수는 결국 상처로부터의 도피일 뿐이다. 그리고 도피는 더 큰 시련을 잉태한다. 결국 절망의 허공에 날리는 주먹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가슴 속 상처가 잔뜩 할퀴어지고 난 다음이다.
그래서 '유정희'는 '약한 남자'다. 그는 불상으로 머리를 쳐 사람을 죽인 잔혹한 살인범이지만, 그 역시 절망과 상처로부터 도망친 것뿐이다. '복수'라는 비극의 비상구를 택한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 일까. 가족의 복수를 위해 빼든 칼은 결국 '내 가족'의 심장을 겨눈다. 마침내 모든 비밀을 알게 된 '아방'에게 '모든 걸 잃어봤냐'고 물어보는 그의 모습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복수의 대가로는 지나치게 슬픈 아픔이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다. 최후의 순간 극단의 선택을 한 그는 분명 상처받은 도시, <상성>의 주민이다.
<올드보이>의 '이우진'도 마찬가지다. 그는 옛 상처에 발이 묶인 채, 한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그는 15년에 걸쳐 치밀한 복수를 진행한다. 하지만 그 역시 절망에의 출구가 될 수는 없다. 끝끝내 상처 속에 잔존하며 버텨내는 그는, 결국은 다 자라지 않은 '소년'. '올드보이'다. 잿빛 복수로 물든 삶은 파멸을 예정하고, 그는 '오대수'의 최후가 곧 자신의 최후임을 안다. 때문에 '오대수'에게 완벽한 복수를 선사하는 순간, 그는 눈물을 흘린다. 예정된 마지막을 향해 걸음을 떼는 그는, 그래서 여전히 소년이며, 나약한 인간이다.
달콤한 초콜릿의 시큼한 끝 맛. 그 씁쓸함을 맛보는 것은 언제나 입안의 초콜릿이 다 녹아 없어진 다음이다. 그래서 우리는 초콜릿의 단 맛만을 기억하기 쉽다. 짙은 카카오 농도의 '다크 초콜릿'이 아니었다면, 영영 그 맛을 잊고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초콜릿의 단 맛 뒤에 감추어진 씁쓸함을. 복수라는 칼의 '양쪽 날'을. 그리고 기호식품으로 맛보는 '초콜릿의 끝 맛'과, 인생에서 느끼는 '절망의 쓴 맛'의 분명한 차이를….
임창수 대학생기자/tangerine5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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