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느와르, 죽지 않아

홍콩 영화가 '느와르'라는 단어로 국내 극장가에 군림했던 적이 있다. 오우삼 감독의 <영웅본색>, <첩혈쌍웅>을 비롯한 많은 홍콩영화들이 할리우드 갱스터 영화에 '남자의 의리와 우정'이라는 코드를 첨가했고, 이는 곧 선풍적인 인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홍콩 영화들은 몇 가지 공식화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3, 4명의 남성이 스토리를 이끌었으며, 여성의 역할은 극히 미비했고, 총격전과 범죄를 배경으로 영웅적이며 동시에 반영웅적인 인간적인 주인공이 등장했다. 특히 동양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독특한 분위기와 허무한 결말은 ‘홍콩 느와르’를 ‘느와르(noir : 검은이라는 뜻의 불어)’로 만든 장본인이었으며, 동시에 국내 흥행을 이끈 일등 공신이었다. 영화의 음울한 분위기와 감성은 급격한 변화의 중심에 서 있던 도시인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충분한 것이었고, 수많은 국내 관객들이 그 ‘전형성’에 열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전형성에 무너진 홍콩 느와르의 신화. 이제는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지만, 여전히 그 부흥의 꿈은 꺼지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총성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것은 <무간도>였다. <무간도>는 총 세 편의 시리즈에 걸쳐 제작되어 홍콩은 물론 국내에서도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할리우드에서 <디파티드>로 리메이크 되어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석권하는 기염을 토했다. <무간도>는 '삼합회'라는 조직을 중심으로 두 남자 주인공의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과 허무주의적 결말을 보인다는 점에서 그간의 홍콩 느와르의 족적을 충실히 쫓는다. 그러나 기존의 유혈이 난자한 총격전과 복수 등의 폭력적 미학성에 기대기보다는 드라마적 요소에 크게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시도는 그간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새로운 모습이었으며 <디파티드>의 성공으로 그 경쟁력을 얼마간 입증했다. '홍콩 느와르만의' 특성을 덜어낸 만큼,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확보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간도>의 유위강, 맥조휘 콤비의 <상성>이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 되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 사실 <상성>은 그 태생부터 순수한 홍콩 느와르라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른다. 유위강, 맥조휘 감독이 <무간도>의 전세계적 히트에 따라 헐리우드로부터 1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지원받아 완성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 <상성>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느와르’라는 장르적 특성과 별개로 <상성>은 홍콩영화의 새로운 도전이며 위기론이 돌고 있는 한국 영화에도 의미를 가진다. '상처받은 도시'라는 부제는 어쩌면 홍콩 느와르의 행보 그 자체다. 홍콩 느와르의 무너진 신화. 그 상처가 마침내는 아물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우리 영화계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도시의 염원이 연금해내는 그 결과를 차분히 지켜보자.
임창수 대학생기자/tangerine51@nate.com
http://camhe.com/default.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