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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석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근본적으로 그의 전작 ‘마이 제너레이션’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창 청춘의 설레임을 만끽해야 할 젊은이들은 기성세대가 물려준 유형, 무형의 빚에 시달린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젊은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전투하듯 살아간다. ‘마이 제너레이션’에 이어 다시 한번 영화의 주인공을 맡고 있는 김병석이 연기하는 기수라는 인물은 드러머가 꿈이지만 형이 버리다시피 남겨놓고 간 어린 조카를 돌보아야 하기에 대리운전으로 연명하고 있는 처지며, 그의 동생이나 다름없는 친한 이웃 청년 종대는 우울증에 시달리는 홀어머니 밑에서 오로지 진짜 총을 갖고 싶다는 열망으로만 살아가는 다혈질 청년이다. 영화는 고단한 세상의 짐을 너무 일찍 지게 된 그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영화에서 가장 힘주어 말하고 있는 지점은 그들의 불행이 단순히 그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순된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다. 아서 펜 감독의 1967년작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원제가 전혀 다르긴 하지만 노동석의 영화와 같은 제목을가지고 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두 영화는 많은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1932년 미국대공황 시기에 은행강도 짓을 하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실존 인물을 영화화한 이 영화에서 평범한 시골 웨이트리스 보니(페이 더너웨이)와한 좀도둑(클라이드)은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하여 은행강도 행각을 벌인다. 그러나 그들은 극악한 범죄자라기보다는 관객들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은연 중 공감하게 되는 안티 히어로처럼 그려진다. 실업자가 넘쳐나던 미국 대공황기는 오로지 권력자와 부르주아 계층만이 돈줄을 틀어쥐고 있던 시절이었으며, 서민들의 숨통을 죄는 그들의 돈이 안전히 보관되어 있던 장소가 바로 은행이었다. 따라서 그들의 강도 행각은 서민들에게 커다란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으며, 영화 속에서 서민들은 그들을 돕기도 한다. 그들과 같은 패거리에 있던 이의 밀고로 인해 둘은 차를 타고 은신처로 오던 도중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살해당하는데, 타고 있던 차와 도망치려던 그들의 몸을 무수히 난타하는 총알 세례를 보여주는 장면은 지금도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었던 것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두 사람을 통해 바라본 일종의 시대정신이었다. 60년대 베트남전의 패배에 충격을 받은 미국인들의 내부에 자리잡은 깊은 공허와 분노는 이 영화를 비롯해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를 주름잡은 아메리칸 뉴웨이브 영화 속에서 드러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깨진 아메리칸 드림의 비극적 최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가장 명징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