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당신 없인 아무것도
| ‘너는 내 운명’의 은하와 석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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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때매/ 내일은 행복할 거야.// 한 봄, 길목에 섰다.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겨울은 이미 흔적조차 없고, 그리고, 그토록 싫어하는 여름이 벌써 슬슬 다가오는 것 같은 슬픈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무리 코를 벌렁대도 이미 라일락 향기가 없다. 난 지금 너무 지쳤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다 어디로 가버리는 건지 모르겠다. 어이! 비 오지 않을래? 비라도 오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은데. 비 오는 날, 집에 가는 753번 버스 맨 앞좌석에 앉고 싶어진다. 하염없이 어룽어룽 빗물 흘러내리는 버스 앞 유리를 바라보며 혼자 심수봉 노래를 중얼대는 시간은 그 언제를 통틀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 중 하나였다. ‘그 때 그 사람’ 으로 시작된 노래는 ‘미워요’ 로 이어지고. 가사를 잘 모르는 ‘백만송이 장미’ 를 후렴구만 대충 흥얼대다가. 결국 마지막 노래는 언제나 ‘사랑밖엔 난 몰라’ 가 되곤 한다. 소주병에 숟가락 넣어 ‘사랑밖엔 난 몰라’를 부르는 은하를 보았다. 그녀가 맘에 들었다. 그녀가 심수봉을 좋아한다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빠져든 것이 왠지 싫었는데 노래하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내가 바보 같았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기에 충분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사랑이란 말, 기분 나쁘겠지만 그건 너무 쉬워졌어. 하지만 순정은 아직 쉽게 할 수 없는 말임이 분명했다. 순정, 왠지 그건 할머니의 추억 같고, 바보의 웃음 같고, 순박 같고, 눈물 같다. 아니, 이건 너무 길고, 틀렸다. 그래, 표현력 심히 딸리지만 그건 한마디로 영롱한 구슬 같다. 난 사랑이라는 말을 떠올렸을 땐 그것이 구슬 같다는 느낌을 절대 떠올리지 못했다. 오랫동안 숙고했지만 아마 그 구슬이 선택받은 일부 사람들만의 몫일 거라는 나의 처음 확신은 변하지 않았다. 은하와 석중의 눈 속에, 마음속에 구슬이 있어. 쏟아지는 햇볕 속에 서로의 구슬이 순간 찬란하고, 소박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겠지. 얼굴도 아니 멋도 아니 아니/ 부드러운 사랑만이 필요했어요./ 지나간 세월 모두/ 잊어버리게/ 당신 없인 아무것도 이젠/ 할 수 없어, 사랑밖엔 난 몰라.// 노래는 끝났지만 나는 아직 그 자락에 맴돈다. 당, 신없, 인 아, 무것, 도. 그녀가 부르는 박자에 잘 귀 기울여 입술을 움직여본다. 당, 신없, 인 아, 무것, 도. 보여? 저 비어있는 공간. 심수봉의 노래에도 그 구슬이 있어. 선택받지 않는 나로서는 철저히 소유할 수 없는 그 노래를 비오는 날이면 불러대는 게 결국 내 행운의 전부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스치곤 하던 특별한 감상이 향수병 날 만큼 좋았다. 난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빌어먹을 기우제는 나 혼자 지내고 있는 걸까. 이 좋은 날에 비와 심수봉을 바라는 심술 아닌 심술이, 갈증이, 부동의 저항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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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영 학생리포터 in_azurblue@naver.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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