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우상의 금박이 벗겨질 때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여자 이야기(Une Affaire De Femmes, 1988)’
● 소피아 코폴라의 ‘마리 앙투아네트’에서 가장 놀라운 지점은 그녀가 저 유명한 앙투아네트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조명했다는데 있다. 영화 속에서 앙투아네트는 그야말로 평범한 사춘기 소녀처럼 그려진다. 소녀들의 심리상태를 다루는데 익숙한 소피아 코폴라의 재능은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어린 남편과 프랑스 귀족들의 날선 질투 아래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 소녀 앙투아네트는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에 집착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왕비의 삶이란 스스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운명이며, 그녀는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사치스런 삶이라는 달콤한 감옥 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정치적 음모에도, 권력욕과도 동떨어진 외로운 사춘기 소녀의 아름다운 방황은 역설적으로 시대의 불운을 타고난 가장 불행한 소녀로서 앙투아네트를 재조명하고 있다.
궁 안의 삶 이외의 다른 것은 일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앙투아네트가 자신이 만든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이라면, 그러한 여성의 전범은 사실 영화가 아니라 문학에 있다. 플로베르의 소설 ‘마담 보바리’에서 보바리 부인은 무미건조한 삶을 사치와 로맨스로 치장하려 한다. 그러나 결국 두 개의 덧없는 꿈은 잔인한 현실이 되어 그녀의 뒤를 덮치고, 그녀는 냉엄한 현실 속에 내동댕이쳐진다. 그녀는 황홀한 우상의 금박이 벗겨지는 순간, 그러니까 자신의 환상이 현실 속에서 깨어지는 순간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깨닫고 만다. 자신의 죄를 모르는 채 타락해가는 아름답고 순진한 여성이라는 소재는 클로드 샤브롤의 영화 ‘여자이야기’에서도 상류층 계급이 아닌 한 노동자 계급의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그려진다.
그 자신 ‘마담 보바리’를 영화화하기도 했던 샤브롤은 ‘여자 이야기’에서 구차하게 살아가던 한 노동 계급의 여성이 우연히 낙태 시술을 하게 되면서 타락해가고, 마침내 사형되는 과정을 지극히 냉철한 사실주의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여주인공 마리는 자신의 죄를 모른 채 낙태 시술로 벌어들이는 돈으로 새로운 인생을 꿈꾼다. 그녀의 죄가 발각되고 감옥에 갇히자, 마리는 순진한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되묻는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죠?" 이자벨 위페르의 냉철하고 무표정한 얼굴은 이 영화에서 그녀의 가공할만한 순진성을 부각시킨다. 그녀의 얼굴은 그 표정 없음으로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순진한 자와 타락한 자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노동자 계급 여성들의 위험스런 불법 낙태라는 불행한 시대적 상황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의 무표정한 얼굴을 통해 칼날처럼 관객의 마음을 후벼판다. 불행한 시대의 타락한 어린양으로서의 여성의 이미지가 이 영화에서처럼 명징하게 드러난 예는 이제껏 없었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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