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마음의 초상
| 알랭 레네 감독의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 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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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로메르가 유성영화 이래 최초의 현대적인 감독이라 칭했던 알랭 레네는 선형적인 이야기 구조가 현대인들의 삶에 맞지 않음을 주창했던 감독이다. 그의 2006년 작 ‘마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동명의 희곡을 각색한 연극적인 영화로 보여질 수 있으나, 알랭 레네는 여섯 사람의 심정적 추이를 현대적인 건축 공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해내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집을 구하러 부동산 업자와 함께 빈 아파트에 들른 니콜은 이 아파트가 자신이 구하던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아닌, 방 하나를 두 개로 나뉘어 놓은, 말하자면 방 두 개 짜리 아파트나 다름없다고 불평한다. 실제로 그 아파트의 방 두 개는 실은 창문이 딸린 큰 방 하나였지만 창문의 정확히 중간 지점에 벽을 만들어 두 개로 나뉘어놓은 방이다. 니콜은 다음과 같이 불평한다. “만약 방 이쪽과 저쪽에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은 창문을 열고 싶어하는데 한 사람은 창문을 닫고 싶어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누군가는 답답해 죽을 거고 누군가는 얼어죽겠죠?” 니콜의 이러한 대사는 영화 전반에 걸쳐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탓에 끊임없이 어긋나는 인물들의 행동에 대한 매우 훌륭한 은유다. 영화는 시종일관 눈 내리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나 모든 사건은 실내에서 진행된다. 시야를 희미하게 가리며 흩날리는 눈처럼,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유리문이나 격자창으로 인해 아주 가깝게 있으면서도 심정적으로 서로 격리되어 있다. 카메라는 끊임없이 유리문이나 격자창 등을 통해 교묘하게 가려진 인물들을 포착한다. 현대인들은 좁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서로 부딪치지만 정작 서로의 마음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알랭 레네의 59년 작 ‘히로시마 내 사랑’에는 이와 유사한 장면이 등장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우연히 만나 서로 정사를 나누는 프랑스 여배우와 일본인 건축가는 마치 독백처럼 대화를 나눈다. 여인은 시종일관 원폭이 떨어진 이후 히로시마의 끔찍한 이미지들을 보았노라고 속삭이지만, 남자는 그녀의 말에 시종일관 “아니야, 당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라고 부정한다. 그들의 독백 위로 흐르는 이미지는 원폭으로 인해 처참하게 무너진 히로시마의 참혹한 풍경이다. 손발이 잘려나간 사람들, 뒤틀린 구조물들, 땅 위에서 우글거리는 벌레들의 풍경 이미지를 관객들은 보고 있고, 여인은 기억한다고 주장하지만, 남자는 부정한다. 각기 상처를 입고 있는 남녀의 기이한 대화는 씻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겹치지만 결코 소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알랭 레네는 정돈된 이야기 대신 서로 겹치고 흩어지는 의식의 흐름을 이미지로 담아내면서,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진 현대인의 파편화된 삶을 누구보다도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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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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