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페셜]꽃잎 흩날리다

꽃잎 흩날리다
봄길 가다 마주친 영화의 풍경을 따라가다
꽃이 피고, 꽃잎이 흩날립니다. 환한 미소 지으며, 다소곳이, 쓸쓸하게, 슬프게, 어지러이, 잔인하게, 찬란하게…. 그렇게 알 수 없는 봄이 왔습니다. 봄은, 아마도 영원히 알 수 없을 테지요. 그저 봄길 가다 마주친 영화의 풍경을 따라갑니다.

슬픈 봄을 가로질러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어, 내게 날개를 줘

소년, 소녀를 만나다 Boy Meets Girl
소년은 지금 막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거든요. 한편 소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런 의미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여전히 소녀는 그를 사랑하는데 말이죠. 그렇게, 실연의 상처를 가득 안은 소년은 슬픈 눈을 가진 소녀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듬어주고 싶었습니다. 진심을 다해 위로해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기꺼이 그 사랑에 취해보고 싶었습니다. 소년은 소녀에게 운명적인 끌림을 느꼈습니다. 소녀와 함께 있을 때, 소년은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평범하지 않은 꿈, 깊이 잠들어야 꿀 수 있는 꿈. 소녀 옆에 있는 게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소년은 최면에 걸린 듯, 황홀한 표정으로 소녀에게 말합니다. “오라면 오고 웃으라면 웃을게. 우리의 운명이 무엇이든 뛰어들 거야. 혼자선 자신의 껍질을 깰 수 없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어.”
하지만 그들 각자의 마음에 새겨져있는 상처가 너무 깊었기에, 너무 지쳐있었기에, 소년은 소녀에게 서둘러 달려갔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알렉스 도와줘, 여기서 나가게 해줘.’ 소녀는 간절하게 외쳤지만 결국 소년은 소녀를 구해줄 수 없었습니다. 소년이 소녀를 품에 안자마자 소녀의 몸엔 새빨간 피가 번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의 봄은 너무나도 슬픕니다. 우리의 봄은 당신의 겨울보다 더 메마르고 아팠습니다. 따뜻해질 수 있을 거라고, 푸른 새싹이 돋아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우리에게 봄은 없었습니다. 난 두 번 다시 생을 살진 않을 것입니다. 결코.
내게 날개를 주세요. 날아가고 싶습니다. 이 어두운 하늘 위로, 슬픈 봄을 가로질러, 훨훨 날아가 버리고 싶습니다.


이 봄, 난 네가 들리지 않아

폴라로이드 작동법 How to operate a Polaroid Camera
‘Like someone. Flushed face. Can't hear anything. Helpless. Sad. Learned how to operate a polaroid camera. 좋아한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력하다. 슬프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배운다.’
꽃잎은 슬픈 듯 연약하게 흩날리고, 선선한 바람은 기분 좋게 살결을 간질이고, 하늘하늘한 연녹색으로 가득 부풀어 오른 내 마음은 콩닥콩닥 뛰고 있어요. 선배가 내 앞에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폴라로이드 작동법 만큼 쉬운 게 어딨어요. 근데 신기한 건, 사람 마음도 똑같다는 거예요. 단순한 몇 가지 감정들만으로 좌지우지 되는 게, 작동법은 의외로 쉽지만 맘처럼 안되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선배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어요. 선배는 지금 내 앞에서 열심히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설명해주고 있지만, 난 선배의 말이 들리지 않아요. 선배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요.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어요. 선배, 이런 내가 답답하죠?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잘 할 줄도 모르고 바보처럼 버벅대기만 하는 나, 내가 봐도 미워요. 그래도 어떻게 해요. 선배 앞에만 서면 내 눈은 멀어버리고, 내 귀는 소리를 잃은 피리처럼 갈 곳 없이 우왕좌왕 하게 되는 걸.
첫사랑. 그래요, 선배는 내게 첫 마음이에요.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내 진심. 숨겨지지 않아요. 들켜버릴 것 같아서 조마조마해요. ‘찰칵’ 어,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눌러버렸어요. 어쩌죠? 실수로 선배의 모습을 카메라 안에 담아버렸어요. 미안해요. 하지만 나 지금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을, 이 사진 속에,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 둔 거 맞죠? 나도, 선배도 이 사진 안에서는 영원히 존재하는 거 맞죠? 찰나는 영원이 될 수 있어요. 있잖아요 선배, 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마음으론 수백 번이라도 할 수 있지만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할 말.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요, 진심을 다해.


내 생애 첫 번째 봄

금발의 초원 Across a gold prairie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우리들 마음 속에도.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봄이 왔어요오-.
처음이야, 봄이 좋다고 생각한 건. 나, 봄에 태어났지만 언제나 봄은 싫었거든. 잔인한 4월에 태어났다면서, 모두가 꽃에 파묻혀 행복해하는 봄은 싫다면서 억지로 말을 끌어다 붙이곤 했었지. 노래도 부르지 않았어. 춤도 추지 않았어. 돌아올 가을을 꿈꾸며 시간을 죽였어.
나리스가 말했어. 난 행복해지는게 무서워요. 나도 그랬어. 억지웃음을 짓기보다는 쓸쓸한 감정 안에 갇혀 있길 원했어. 고된 살아냄을 견디게 하는 건 행복이 아니라 차라리 날 몰아치는 고통이었어. 하지만 닛포리는 말했어. 창가에서 뛰어나가면, 난 하늘을 날아요. 항상 꾸는 꿈에선 그래요. 창가에 서서 간절히 바라면 금빛의 초원에 배가 도착하죠. 그러면 난 그 배를 타고 세계일주를 해요. 나리스도 같이 가지 않을래요?
현실의 난, 슬픈 존재. 따뜻한 초원에 발을 담그고 앞으로 나아가길 망설이고 있어. 하지만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봄은 나에게 속삭이고 있어. 처음으로, 행복과 마주하기 위해 창가에 섰어. 꿈이라면 날아오를 것이고 현실이라면 떨어지겠지. 하지만 어느 쪽이든 태어나 처음 맞는 봄은 분명 멋질 거라고 생각해. 이제 막 초원이 금빛으로 물들었어. 곧 배가 도착해. 나 언젠간 꼭 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기류를 탈거야. 내일 아침 일어나 또다시 슬픈 눈을 뜨고 싶진 않아. 안녕.


봄, 밤, 바람

수면의 과학 The science of sleep
밖은 아직 어둡다. 손과 이불이 온통 푸른 물감 투성이다. 혹시…. 베게 밑을 뒤적거려 본다. 예상대로 구겨진 종이가 집힌다. 종이를 펼쳐본다. 역시 이번에도 알아볼 수 없다. 어렴풋이 조금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꿈속에서 엄청난 달력 디자인을 떠올린 난 영감을 받자마자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종이나 붙잡고 물감을 짜댄 것이다. 싸한 아크릴 냄새가 코를 찌르며 가벼운 현기증이 났다. 나는 눈을 감았다. 꿈에서 나는 프랑스에도 갔었고 그림도 그렸으며 사랑도 했다. 개별적으로 일어난 일들이지만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계절이 바뀌어도 파리의 기억은 날 놓아주지 않았다. 왜 사랑은 꿈에서처럼 되지 않을까?
감은 눈 위로 스치듯 바람이 분다. 그녀의 골든포니보이가 내 옆을 지나쳐 달리고 있는 것이다. 공기 속에 그녀의 온기가 전해진다. 구해줘. 나는 문득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꿈에서도 그녀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맡에서 그녀의 따뜻한 숨이 불어왔다. ‘스테판?’ ‘스테파니, 손잡아줄래? 잠들 수가 없어. 어질어질한 내 머릿속을 정리해 줘.’ 그녀는 내 손을 잡는다. 나는 다시 잠이 든다. 꿈, 나는 그녀와 함께 골든포니보이를 타고 습한 초원을 달린다. 아크릴 냄새는 사라지고 없었다. 기억은 꿈에서도 그녀의 향기를 고스란히 재현해냈다. 도화지 위에 푸른 꽃이 흐드러진 늦봄의 밤, 더운 바람은 낮은 곳으로 불고 있었다.


춘곤증에 걸려 죽을 것 같은 봄 고양이

타락천사 Fallen Angels
참 좋은 봄날이다. 이런 날 책상에만 앉아있어야 하다니. 마냥 네 팔자가 부러울 뿐이야. 옆집 아저씨가 곱게 주차해놓은, 반짝 반짝 광이 나는 은색 소나타 택시위에서 퍼지게 잘도 자는 너는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열심히 했던 걸까. 니가 샐쭉한 눈으로 슬며시 다가와 살갑게 내 팔에 얼굴을 문댈 때면 나는 봄이 느껴져. 내가 말한 적 있던가? 너의 이름에 대해서 말이야.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나는 타락천사의 하지무를 떠올렸어. 그도 밤이면 너처럼 몰래 골목골목을 돌아다녔어. 문 닫은 다른 사람의 가게에 무작정 들어가서 주인 행세를 하는 거야. 손님을 잡아끌어 머리를 강제로 감겨주고, 고기며 아이스크림이며 아무거나 팔면서. 네가 내 다리와 팔에 감겨들듯 그도 사람들에게 사락사락 감겨들어서 말이야.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을 때를 기억해. 그녀의 어깨에 마냥 비비적대며 눈 코 입이 다 만족한 고양이처럼 씽긋거리던 그의 얼굴을. 인간의 사랑이 뭐든 간에, 심드렁한 그녀의 표정이야 어떻든 간에 말을 못하는 하지무는 그녀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소유한 거야. 비가 내리는 창 밖에서 한참 그와 그녀를 보고 있을 때 네가 다가왔어. 바보 같은 모습으로 빗방울을 털어내고, 내 바지에 네 젖은 털을 천연덕스럽게 문지르면서. 결국 그녀는 그를 두고 떠나갔고 나는 어설픈 너를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어.
넌 참 이상한 녀석이야. 사람들이 지나가면 빤히 쳐다만 볼 뿐 다른 고양이들처럼 도망가지도 않고, 요리조리 사람들 다리에 휘감기곤 하니까. 고양이는 도도함 빼면 시체라더니, 너는 도도함 더하면 시체가 될 녀석이잖아. 어쨌든 여기 창가에서 이렇게 네가 잠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나도 졸려. 따뜻해서 귀찮은 봄은 사랑하기에도, 이별하기에도 참 어설픈 시간 같아. 너처럼 말이야. 벌써 4시간째 자고 있는 봄 고양이 하지무야, 난 네가 춘곤증에 걸려 죽을까봐 겁나. 어서 자고 일어나. 꿈은 깨어서 꿔도 좋을 하루야. 어설픈 게 좋아. 봄날이잖아.

문화팀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435&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