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영웅의 그림자
| 샘 레이미 감독의 ‘다크맨(Darkman, 19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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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단순히 유명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블록버스터 이상의 평가를 얻은 데에는 누구보다도 감독 샘 레이미의 공이 크다. 약관 18세의 나이에 친구들과 함께 초저예산으로 만든 틴에이저 호러 무비 ‘이블 데드’의 성공은 철저히 그의 아이디어와 실험 정신 덕택이었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말초 신경만을 자극하는 호러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주인공 피터 파커의 인간적인 고뇌, 초인으로서의 고된 운명과 같은 주제를 보다 어두운 비전으로 보여주는 샘 레이미의 또 한편의 영웅 영화가 있다. 그는 영웅은 영웅이되 선과 악의 불분명한 경계에 선슬픈 운명의 사나이이다. 샘 레이미의 90년작 ‘다크맨’은 코믹스를 원안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영웅 코믹스의 서사구조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단지 차이점이라면 다크맨이라는 이름처럼 이 초인 영웅의 운명은 그 어떤 영웅보다 가혹하고 어둡다는 사실뿐이다. 인공 피부를 연구하는 과학자 페이턴(리암 니슨)은 자신의 애인인 변호사 줄리가 한 불법 부동산 업자의 뇌물 공여 기록을 자신의 사무실에 두고 가는 바람에 졸지에 부동산 업자의 하수인에 의해 연구실을 폭파당한다. 얼굴과 손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살아남은 페이턴은 통증을 뇌로 전달하는 신경줄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는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 감정의 무제한 증폭으로 인해 괴력을 지니게 된 그는 추악하게 변해버린 자신의 얼굴에 절망하고 붕대를 감고 숨어 다니며 인공피부 연구에 몰두해 자신의 얼굴 가면을 완성한다. 그러나 그 가면의 치명적인 약점은 99분이 지나면 녹아버린다는 것이다. 그는 각각 다른 가면을 쓰고 자신을 해친 악당들을 처단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의 안에 생겨난 광기로 인한 두려움과 자괴감으로 결국 사랑하는 줄리의 곁을 떠나 익명으로 살아간다. ‘다크맨’에서 샘 레이미가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불행한 운명으로 인해 초인이 된 다크맨이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겪는 분열증이다. 그토록 원하던 복수를 행함과 동시에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던 악당과 다를 바 없는 증오를 배우게 된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순진한 과학자가 아니다. 가혹한 운명은 그를 초인이자 괴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얼굴 가면을 만들어 쓰면서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운명을 타고 난 비극적인 초인 다크맨은 애인 줄리에게 페이턴은 죽었다는 말을 남기고 익명의 가면을 쓰고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다크맨’은 영웅의 빛과 그림자, 초인이라는 환상 뒤에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보여준다. 이는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는 입체적인 영웅과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악당들에 대한 연민을 보여주는 샘 레이미식 수퍼히어로 서사의 원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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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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