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네 꽃병에 꽂아다오

사랑을 놓치다

● 봄 냄새 나는 음악을 찾다가 외국말보다는 내 마음에 더 착 달라붙어 살가울 수 있는 우리말 노래를 둘러보게 됐고, 더 이상 ‘센치’해지기 무서워 깊이 묻어뒀던 ‘버스, 정류장’ OST가 떠올라 플레이를 시키다보니 ‘사랑따윈 난 몰라’ 고개 저었던 이 영화 ‘사랑을 놓치다’가 손에 잡혔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흘렀던 환상적인 무드의 주인공 루시드 폴이 ‘사랑을 놓치다’ 의 첫 멜로디를 장식하거든요.
남자는 이별을 통보받고 괴로웠는지 술을 좀 마셨습니다. 저편 대답 없는 옛 여자의 매정한 통화음이 서러워 공중전화 박스를 부순 다음, ‘울면 지는 거야’라고 위로의 말 건네는 친구 앞에서 ‘꺼이꺼이’ 울어댑니다. 그리고, 이 남자를 오랫동안 바라봤던 여자는 여전히 말 한마디 못하고, 깊은 밤 창가 멀리를 바라보며 잘 피우지도 못하는 입담배를 피웁니다. 여자의 친구는 속이 타고, 루시드 폴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가 끼어듭니다.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 혼자라는 게 때론 낙인 같아.”
여자는 항상 당장이라도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만, 항상 그냥 뒤 돌아 서게 됐습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남자의 사랑, 남자의 여자들을 지켜보며 쓸쓸히 시선 아래로 거둔 적 한두번이 아니기에, 결국엔 여기서 ‘뚝’ 끊어버리자 눈물로 결심합니다. 한참 늦긴 했지만 그래도 번지수 잘 찾아 여자에게 온 이 남자를 용서하고 칭찬을 해주려 했더니, 웬 바보짓을 이렇게 해대는지. 그의 친구 말을 빌어 ‘병신’이라 욕하면서도 자꾸 두 눈을 바라보게 되는 이유는, 남자도 여자와 같은 눈빛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눈빛, 더 사랑하고 싶은 눈빛이요. 이 풍경들 위로 메인 테마격인 두 노래, 앞서 말한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와 김연우의 목소리로 유명한 ‘사랑한단 흔한 말’의 연주버전이 흐릅니다.
“사랑한다는 흔한 말, 한번도 해주지 못해서 혼자 서운한 마음에 숨어버렸니.” 힘들었을 법도 합니다. 지켜보던 이가 자동 한숨과 함께 ‘꼬여도 어쩜 이렇게 꼬이니’ 할 때쯤, 또 다시 등지고 돌아서야 했던 당사자 두 사람은 눈물을 터뜨립니다.
하필, 손에 잡힌 책에서 최승자 시인의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를 발견했습니다.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 병/ 에// 꽂/ 아/ 다/ 오//
사랑이란 게 이런 거랍니다. 국적 불문하고 저 멀리 있는 탐 웨이츠 아저씨가 그의 곡‘Time’으로, 우리의 백설희 아줌마가 ‘물새 우는 강 언덕’으로 알려줍니다. 해피엔딩이라 굳게 믿고 싶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요.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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