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아버지’가 걸어온다

 

대개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은 마음보다 몸으로 먼저 다가온다. 그 그늘 아래서 든든했던 날들의 기억들은 희석되기 쉬울지언정, 문득 눈에 띈 아버지의 굽은 등은 내내 가슴을 적셔온다. 다가와 슬며시 잡아주셨던 손의 온기와 유난히도 지쳐 보이시는 어깨. 그래서 더 아련한 그 이름, 아버지. 2007년 봄, ‘아버지’가 극장 문을 두드린다.

 

임창수 대학생기자/tangerine51@nate.com

 

 

‘요소’로 더 빛난 아버지

 

한국 영화 속에 그려진 아버지의 모습은 대개 ‘주제’라기보다는 ‘요소’에 가까웠다. 극중에 그려진 아버지의 사랑은 그 자체로 목소리를 내기 보다는 상황자체의 개연성에 기여하거나 관객과의 소통을 꾀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상황의 중심에서 굵직한 소리로 내내 ‘사랑'을 외쳐왔다.

 

<괴물>의 박강두는 무능하고 답답한 소시민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도 딸을 위하는 아버지다. 현서의 핸드폰을 사주기 위해 몰래 동전을 모으고, 갖은 실험에 시달리면서도 딸 걱정에 잠 못 이룬다. <괴물>은 ‘괴물’이라는 실체로 두려움에 투영된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형상화한다. 미지의 생물에 의해 파괴된 가정은 사회에 치여 허덕이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이며, 이 영화의 정치적 발언을 가능케 하는 ‘틀’이다. 영화 속 다른 상징들과는 달리 박강두의 부정(父情)은 희화화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 색을 그대로 유지하며 ‘틀’을 지키고자 하는 가족의 사투를, 그리고 정치적 발언을 센스 있게 해내는 영화의 걸음걸음을 시원하게 그려낸다. 현서를 지키고자 하는 강두의 사랑은 곧 사회의 틈바구니에서 가치를 지켜나가는 이들을 그려내는 물감이며, 영화의 세심한 붓질을 가능케 해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다.

 

한편, <그놈 목소리>에서 나타난 부정(父情)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하나의 ‘촉매’에비유 할만 하다. 영화는 유괴된 아들을 찾는 아버지의 땀과 눈물을 통해 관객과 소통한다. ‘현상수배극’에 걸맞게 영화는 범인의 족적을 쫓지만, 관객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은 부모의 사랑, 그 묵직한 진정성이다.  특히, 범인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오열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실로 가슴 절절하다. ‘그 놈’을 잡자고 부르짖는 본래의 줄기는 놓지 않되, 그 교감과 공감의 핵심에는 분명히 날 선 ‘아들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 존재한다. 가슴 찡한 진동의 폭과 깊이는 영화의 메시지를 보다 분명히 전해준다.

 

 

아빠의 변신은 무죄, 그 남자의 ‘변신기’

 

아버지라는 이름에는 실로 많은 책임이 얹혀져 있다. 한 남자가 아버지로 거듭나는 과정은 수많은 책임을 감내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자체로 훌륭한 성장 드라마가 된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가족’이 된다는 것은 그래서 더 어려운 일이다.

 

<파송송 계란탁>의 대규는 불법 테이프를 팔며 사는 한량이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아들이라고 우기는 인권을 떼놓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쉽지 않다. 인권을 떼놓으려 시작한 국토종단 내내 티격태격한 끝에 대규는 마침내 총각생활에 마침표를 찍기로 결심한다. 책임으로부터 도망치기 바쁘던 그도 사랑 앞에서 가슴을 활짝 연다. 감수해야 할 책임과 무게가 만만찮지만, 둘은 결국 가족이 된다. 남자가 ‘아버지’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플라이 대디>의 가필도 변신을 꾀한다. 소심하고 무능한 가장이었던 그는 딸을 위해 한바탕 ‘전투’를 결심한다. 싸움고수 승석의 트레이닝 아래, 이를 악물고 버텨내는 중년의 가장. 그리고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가족. <플라이 대디>는 이런 정서적인 배경을 깔고 가필의 혹독한 변신과정을 살핀다. 무기력한 샐러리맨이던 가필은 훈련 중에 점차 자신을 찾고, 마침내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아버지’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새로이 아버지로 성장해낸 ‘한량’과 가정을 지키고자 땀을 쏟는 ‘중년’. 두 남자의 변신이 훈훈하다.

 

 

아버지, 충무로를 내딛는 그 걸음

 

 

2007년 봄, 충무로는 유독 ‘아버지 영화’가 강세다. 조직폭력배 가장 인구의 애환을 담은 <우아한 세계>가 5일 개봉 한데 이어, <눈부신 날에>와 <날아라 허동구>가 차례로 포진해 있다. 더딘 걸음을 옮겨 드디어 스크린 중앙으로 나선 아버지들의 모습. 과연 어떻게 그려졌을까.

 

철없던 한량 종대가 자신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이를 거부하다가 마침내는 받아들인다는 내용의 <눈부신 날에>는 얼핏 <파송송 계란탁>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눈부신 날에>의 진짜는 그 다음부터다. 겨우 마음을 연 종대와 딸 준이의 행복한 시간은 잠깐일 뿐. 준이의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후, 종대의 행보가 화면을 가득 채워낸다. 딸을 위한 아버지의 눈물 어린 선물. 그 시린 걸음들이, 부셔오는 눈을 마저 함뿍 적셔온다.

 

4월 26일에 개봉예정인 <날아라 허동구> 또한 따뜻한 ‘아버지’ 영화다. IQ 60의 동구와 그런 동구가 마냥 사랑스러운 아버지 진규. 진규의 소원은 오로지 동구의 초등학교 무사졸업이다. 하지만 정수기의 등장으로 ‘물 반장’ 동구는 위기에 봉착하고, 바라고 또 바라는 졸업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동구의 졸업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거침없는 진규. 아들을 위해 세상과 맞서는 아버지의 위대한 여정이 펼쳐진다.

 

5월 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장진 감독의 <아들>은 15년 만에 단 하루의 휴가가 허락된 무기수 아버지와 사춘기 아들의 가슴 설레는 만남을 그렸다. 대한민국 대표 흥행배우 차승원과 주목 받는 신예 류덕환이 함께해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

 

후반 작업 중인 <이대근, 이댁은> 역시 어머니의 제사를 위해 3년 만에 모인 심통구단 아버지와 말썽 백단 자식들의 상봉기를 그렸다. 다니엘 헤니 주연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마이 파더>는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으로 지원한 입양아 제이스 파커와 사형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다룬다.

 

http://camhe.com/defaul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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