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광대를 위하여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길(La Strada, 1954)'
●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은 떠도는 인생의 이야기다. 전국민적 공감을 낳은 ‘서편제'의 후일담 격인 이 영화는 소리꾼 송화(오정해)와 그의 이복 동생 동호(조재현)의 일생에 거친 애틋한 사랑을 다룬다.
눈으로 가야 할 기가 목으로 모아져 득음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모진 아버지의 열망 때문에 장님이 된 송화의 생애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각고의 고통을 견딘 장인적 결기가 서려 있다. 그것은 100편의 영화를 만들기까지 거장 임권택이 통과한 굴곡진 삶과도 겹쳐진다. 저잣거리 유희로나 여겨지는 소리꾼의 존재는 지금 세상에서 잊혀져 가는 숭고한 가치를 상기시킨다. 자고로 광대는 가장 천한 직업 중의 하나였지만, 인간사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거리의 예술가로서 그들은 비루함에서 숭고함을 이끌어낼 줄 아는 예술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이들이기도 하다.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 뿐만 아니라 ‘취화선'이나 ‘하류인생'과 같은 근작들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영화 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삶,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천년학'에는 ‘서편제'에서도 드러나는 광대에 대한, 비천한 예술가에 대한 감독의 공감대와 애정이 녹아있다.
이렇듯 비루한 예술가, 혹은 광대에 대해 무조건적인 애정을 지닌 감독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불세출의 이탈리아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랑극단과 광대에 심취했으며 그의 영화들에서는 매번 광대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의 아내이자 역시 불세출의 배우인 줄리에타 마시나는 풍파를 겪은 모진 인생에도 불구하고 그 순수함으로 인해 어떤 숭고의 경지에 가 닿은 광대로 가장 적합한 배우였다. ‘길'에서 차력사 잠파노에게 팔려온 광대 젤소미나는 자신의 기구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여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녀를 학대하고 부리는 짐승 같은 남자 잠파노에게조차 애정을 기울였던 젤소미나는 잠파노의 우발적인 살인으로 인해 미쳐버리고, 잠파노는 그런 그녀를 버리고 도망치지만 결국 그녀의 죽음 앞에서 뒤늦게 오열한다.
펠리니는 가장 어둡고 비참한 세계 속에 존재하는 예술가인 광대에게서 역설적으로 숭고함을 발견한다. 펠리니는 세계의 모순을 이겨내기 위해 상상의 힘을 동원했으며 그러한 상상이 단순한 백일몽이 아닌 현실의 또 다른 반영이자 잔혹한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젤소미나는 펠리니가 그려낸 상상의 힘의 정점에 선 광대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 자신이 슬픔으로 가득 찬 운명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재주로 다른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광대의 삶은 숭고한 자기 희생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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