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페셜]영원한 스토리텔러, 빔 벤더스 eternal story-te

대리주차 하다
시골로 도망갈 것 같은 한국
빔 벤더스 감독 내한 기자회견
Q 한국에 온 소감은 ● 1977년 이후 30년 만이다. 다시 오게 되서 기쁘다. 지난번에 온 후로 서울은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앞으로 30년 이내에 다시 한국에 올 수 있도록 애쓰겠다.

Q 이번 ‘빔 벤더스 특별전'에서는 선별된 작품 10편이 상영된다. 상영작 중 어떤 영화에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10편의 영화 모두 다 내겐 소중한 영화들이다. 상영되는 작품 목록을 훑어보면서 ‘더 블루스 - 소울 오브 맨'이나 ‘베를린 천사의 시'를 고르려고 했지만, 막상 하나를 고르려고 하니 죄책감이 든다. 딱히 하나를 고른다는 게 참 어렵다. (잠시 고민)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혜택을 받지 못한(성공하지 못한) 영화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 같다.

Q 마지막 작품이었던 ‘돈 컴 노킹'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 ‘돈 컴 노킹'까지 3편의 영화를 연달아 찍었기 때문에 ‘돈 컴 노킹' 작업을 마친 뒤엔 반드시 휴지기를 갖겠다고 아내와 약속을 했다. 그래서 그 후로 2년 반 동안 장편 영화 작업은 하지 않았고, ‘국경없는 의사회'에 대한 다큐멘터리만 하나 찍었다. 아내와 함께 여행도 했다.

Q 영화 ‘구름 저편에'에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을 도와 영화 작업을 했다. 그 외에도 젊은 후배 감독의 영화에 출연했다거나 함께 작업한 적이 있나. ● 여기저기 잠깐씩 출연하긴 했다. 가장 최근에는 독일의 젊은 감독이 나의 초기시절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든다고 해서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극중에서 난 주유소 직원으로 나오는데, 주유소를 폭파시키는 장면을 촬영했다.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웃음)

Q 당신은 독일 사람이지만, 미국에서 오래 살았고, 미국의 모습이나 유럽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유난히 많다. 당신에게 미국은 어떤 나라인가.
● 어렸을 때부터 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매료됐었다. 그 당시 미국은 전쟁을 마친 직후였기 때문에 파괴되어 있었고, 황폐했다. 반면에 독일은 굉장히 지루했다. 물론 나는 독일 사람이지만 미국의 만화, 음악, 책(‘톰소여의 모험' ‘허클 베리 핀') 같은 ‘미국 문화'를 접하며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레 미국에 대한 인식이 싹텄다. 나는 미국이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고층 건물, 여자들…. 내가 그려온 미국의 느낌은 그러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미국에 가서 그동안 그려왔던 것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내 초기 영화 중 한편에 ‘양키들이 우리의 무의식을 식민지화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런데 난 미국이 우리의 무의식뿐만 아니라 의식까지도 식민지화했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 않나. 난 15년 동안 미국에서 거주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보는 미국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랜드 오브 플렌티'에서 보여 지는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미국의 현재다. 그래도 미국에 대한 나의 애정은 여전히 환산 불가능하다.

Q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더 블루스 - 소울 오브 맨' 등 당신 영화에는 유독 음악 다큐멘터리가 많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일단 음악을 너무 좋아한다. 음악은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내가 21살 때 어떤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시 나는 테너 색소폰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서 단편영화라도 한 번 찍어볼까 했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더라. 카메라가 있으면 했지만 너무 비쌌다. 그러던 어느 날 전당포를 지나다 60mm짜리 카메라를 우연히 발견했다. 너무 사고 싶었는데 마침 내가 가지고 있던 색소폰과 가격이 똑같은 게 아닌가. 그래서 색소폰과 카메라를 바꿔서 나왔다. 그 후론 죄책감 때문에라도 열심히 음악다큐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음)

Q 내한한 이후, 한국에 대한 정서적인 느낌이나 한국에서 접한 풍경들 중 차후 당신 영화에 영감을 줄 만한 부분이 있었나. ● 공식적인 방문은 77년 이후 없었던 것으로 되어있지만 사실 그 사이에 2∼3차례 한국에 왔었다. 서울은 정말 거대한 도시가 되었다. 마치 주차빌딩 같다. 대형차 천지다. 현재 나는 소유하고 있는 차가 없고, 베를린의 경우에도 작은 차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전부 큰 차들 뿐이다. 이곳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서울에서 받은 인상으로 영화를 찍게 된다면 모두들 큰 차에 앉아 다들 휴대전화를 하고, 주차공간을 찾는, 그런 모습을 담을 것 같다. (웃음) 그 중 한명을 대리주차 해주는 주차요원으로 설정하고, 대리주차 해주는 듯하다가 그 차를 타고 도망가서 시골여행을 하는 스토리가 될 것이다. 내가 주차장에서 발렛 파킹을 하는 사람인데 아주 좋은 차가 있다면 차를 탄 채로 바로 도망갈 것 같기 때문이다. 그 자동차가 벤틀리 정도 된다면 말이다.

Q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 앞으로 2편 정도의 영화를 생각중이다. 하나는 지금 현재 각본을 쓰고 있는 중이고, 아마도 올해 말쯤 이태리에서 촬영할 것 같다. 또 다른 하나는 12년 만에 온전한 독일어로 만드는 영화가 될 것 같다. 그리고 아까 언급했던 ‘국경 없는 의사회'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지금 베를린에서 개봉한 상태다. 5명의 감독이 참여한 다큐멘터리인데 현재는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부분들, 보이지 않는 5개의 갈등이나 질병을 다뤘다. 내 파트는 전쟁에서 여성들이 당한 폭력에 관한 것이다. 전쟁 중엔 여자를 강간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곤 하는데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지금 아프리카 내에서나 타 지역의 내전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이것 또한 일종의 질병이다. 한국에서도 개봉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지혜를 향해 먼 길 가는 중
빔 벤더스 감독 관객과의 대화
오즈 야스지로 감독에게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자세를 배웠다

도쿄가 (Tokyo-Ga, 1985)

‘도쿄가'는 빔 벤더스 감독이 일본영화계의 거장으로 칭송받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을 회고하며 그에 대한 오마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김홍준 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빔 벤더스 감독은 “83년 봄 당시, ‘파리, 텍사스' 촬영이 가을로 연기되면서 내게 예상치 못했던 시간이 주어졌는데, 때마침 그때가 오즈 감독이 돌아가신지 2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에 친구인 카메라맨과 함께 즉흥적으로 도쿄 방문을 결정했다.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으므로 16mm 카메라를 가져갔었고, 일행이 우리 둘 뿐이었기 때문에 내가 직접 사운드를 녹음했다”며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오즈의 영화문법 중 당신의 영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영화가 이렇게 완벽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놀라운 점은 그가 남긴 54편의 영화가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이나 가족은 단순히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본질'을 드러내는 캐릭터들이다. 이건 단순한 기술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를 아무리 따라하려해도 그의 영화 속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부분까지 담아낼 수는 없었다”며 “영화를 단순하게 만드는 것만큼 복잡한 건 없다. 두 번째 영화부터는 첫 영화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기 마련인데, 오즈 감독은 늘 그 순수함을 잊지 않았다. 그게 완벽이다. 나는 오즈 감독에게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자세를 배웠다”고 답했다.

여행은 내 모든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

관객과의 대화(Guest Visit)의 첫 번째 영화는 198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파리, 텍사스'였다. 진행을 맡은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은 ‘당시 영화학도들의 기준이 되고 꿈이었던 영화'라며 운을 뗐다. 관객들은 곧바로 영화 속 길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했는데, 빔 벤더스 감독은 “길은 나를 깨어있게 하며 여행은 내 모든 영화적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답했다. 이어 작품 속 트래비스가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자신과 닮았다며 다행히 자신은 사랑을 찾았다고 말하기도(아내 도나타 벤더스는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트래비스가 아이와 친엄마의 만남만 주선하고는 다시 길을 떠나는데 대해서는 이미 가족의 이상적인 관계로의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자신이 한 발 물러설 필요성을 느낀 것이었다고 해설했다. 한편 관객들의 관심은 아이라기엔 성숙한 트래비스의 아들 헌터 캐릭터에도 집중됐는데, 감독은 아역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것 자체를 즐겁고 놀라운 일이라고 표현했다. 덧붙여 자신의 초기작 ‘도시의 앨리스'의 예로 들며 아역 배우는 스스로의 영역에 자유롭게 두었을 때 최상의 연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서 7살 유치원생으로 출연했던 헌터는 지금은 33세의 영화감독이 되어있다고. ‘파리, 텍사스'는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여운이 강하게 남는 작품. 특히 영화에서 라이 쿠더(Ry Cooder)의 블루스 음악인 ‘Dark was the night'을 메인 테마로 사용한 이유를 묻자, 감독은 남부 노예들의 시련이 담긴 블루스가 자신에게도 늘 우울함(blues)을 떨치는 구제의 수단이었다고 강조했다. 작품이 존 포드 감독의 ‘수색자'의 재해석이냐는 질문에는 자신은 다른 영화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지 않지만 그와 같은 평가를 받는 것은 영광이라고 답했다.

전직 천사에겐 어떤 직업이 어울릴까

베를린 천사의 시
(Wings Of Desire, 1987)


허공에 악수를 청하며 천사와 인간 양쪽을 동시에 당황시키는 콜롬보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만들어진지 20년이 흐른 ‘베를린 천사의 시' 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생생하게 상영 중이다. 모두를 웃게 한 전직 천사(ex-angel) 콜롬보에 대해 빔 밴더스 감독은 “시나리오 없이 하루하루 즉흥적으로 영화를 만들어가다가 문득 재미있는 캐릭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으며, 전직 천사의 역에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 어울릴까 고심 끝에 정치가도, 운동선수도 아닌 콜롬보가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인간이 되고 싶은 천사를 통해 하루하루를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이야기하는 ‘베를린 천사의 시'는 ‘파리, 텍사스'에 이어 빔 밴더스 감독에게 칸영화제 수상의 기쁨을 다시 한 번 안겨준 작품이자 전 세계 여러 사람들이 오마주를 바친 아름다운 영화. 시적인 대사와 천사의 시점 쇼트, 흑백과 컬러의 교차를 통해 그는 천사가 인간을 바라보는 부드럽고 동정어린 시선을 담아낸다. 극중 미스터리한 인물로 등장하는 노인 호머는 천사와 사람의 경계에 위치해서 평화를 이야기하고픈 ‘영원한 이야기꾼' 을 의미한다고. 원제 ‘베를린의 하늘' 과 미국 제목인 ‘욕망의 날개(Wings of Desire)'의 차이에 관한 질문에 대해 그는 ‘칸느 상영 직전까지도 영어 제목을 짓지 못하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며 후일담을 들려줬다. 이어 스스로에게 주어진 욕망(desire)은 무엇이냐고 묻자 “나는 내가 만난 유일한 천사와 결혼을 했으며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 행복하다. 영화 일을 하기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작업을 해야 하는 처지가 아니라서 기쁘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또한 현재는 디지털 기술을 통해 예전의 본인은 상상도 못했던 것을 해낼 시대라며, 어디에도 근거하지 않은 자기만의 영화를 최선을 다해 만들 것을 격려했다.

‘위즈덤 시티까지 42마일'

돈 컴 노킹
(Don't Come Knocking, 2005)


관객석 뒤에서 대기 중이었던 그는, 그룹 코어스의 보컬 안드레아 코어와 U2의 보컬 보노가 함께 부른 영화의 메인테마를 비롯한 엔딩 음악 두곡을 크게 틀어달라고 따로 요청하기까지 했다. 무대 위에 올라서는 “어떻게 봤냐”고 먼저 질문을 던진다. 상영작중 가장 근작 ‘돈 컴 노킹'에서도 그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음악에 신경 쓴 것이 분명했다. “처음부터 주연, 각본, 음악, 이 세 가지를 함께 끌고 가고 싶었다. 주연이자 각본을 담당한 샘 쉐퍼드는 스크립을 완성하기 전부터 음악을 담당한 T-본 버넷과 함께 작업했다. 두 사람 모두 20년 이상을 알아온 사이다.” ‘돈 컴 노킹'의 주인공은 서부영화 스타. 영화 속에서는 광활한 사막의 카우보이인 그지만 사실은 제작사와 스케줄에 속박당한 인생이었기에 탈출을 감행한다. 감독은 이를 “서부영화는 판타지, 허구의 자유, 책임에 대한 반기 일 뿐이었다”고 설명하며, 이어진 질문 “촬영 중 도망간 적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수차례 도망가고픈 충동을 느꼈지만, 독일사람은 책임감이 강하다”며 농담을 던졌다. 그는 영화는 이야기 하는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을 녹여내는 장르라며, “영화를 찍지 않았으면 회화를 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극중 주인공의 고향인 네바다의 풍경을 미국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과 직접 연결시킬 수 있듯 회화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WISDOM 42MILE, DVIDE 1'이라고 적힌 고속도로 표지판이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에 대해서는 “촬영을 하러 가는 길 고속도로를 잘못 돌았는데 이 표지판을 발견했고, 대단한 메타포라고 생각해 아직 도시에 있던 세 아이들을 불렀다. 마지막 장면 촬영 순서가 아니었기 때문에 미리 노래를 배울 수 없어 그렇게 노래를 못 부른 것 (웃음)”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며 “실제 나도 지혜를 향해 먼 길을 가고 있는 중”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문화팀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376&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