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재발견]복수의 증거
| 샘 페킨파 감독의 ‘가르시아(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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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만큼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도 없다. 최근 개봉한 최양일 감독의 하드보일드 누아르 영화 ‘수' 역시 쌍둥이 동생의 원한을 갚기 위한 형의 처절한 복수담이다. 고함과 괴성이 오가는 마지막 20분의 피투성이 액션은 소름이 끼칠 정도인데, 이 장면은 최양일이 왜 하드보일드 승부사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고로 복수에는 피가 필수적으로 등장하고 처절한 복수의 육체적 증거 또한 필요하다. 신출귀몰한 해결사 수는 동생을 살해한 청부살인자의 목을 따 그의 목소리를 빼앗는다. 박찬욱의 ‘복수는 나의 것'에서 류(신하균)는 장기밀매단 소굴에 잠입해 그들을 작살낸 후 내장을 꺼내 씹는다. 이 엽기적인 복수의 증거들에 필적하는 괴상한 사례가 있으니 폭력의 피카소라 불리는 샘 페킨파의 ‘가르시아'다.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 와라'라는 기나긴 원제를 가진 이 영화는 한 조직의 보스가 자신의 딸을 임신시킨 범인으로 지목된 가르시아의 목에 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상금을 노린 남자 베니(워렌 오츠)는 가르시아가 자신의 애인과도 내밀한 관계였음을 알고 복수심을 불태운다. 하지만 들끓는 심정으로 그를 찾아갔을 때 가르시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베니는 비교적 쉽게 가르시아의 목을 얻는다. 목을 들고 떠나는 여행에서 베니는 생면부지의 가르시아에게 묘한 동정심마저 느낀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이 기괴한 복수의 사슬을 맨 처음 엮었던 조직 앞에 가르시아의 목을 가져갔을 때, 더 이상 그들에게 복수의 증거가 필요치 않게 됐다는 사실이다. 누군지 모를 미지의 원수는 죽었고 그의 목은 수중에 있지만 복수를 사주한 자는 더 이상 그 증거가 필요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실 가르시아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이길래 두 여자의 환심을 사게 됐는지, 또 왜 죽었는지 따위는 중요치 않다. ‘가르시아'에서 샘 페킨파는 특유의 뒤틀린 유머로 아이러니한 세계의 모습을 그려낸다. 관객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마지막 장면은 그 백미라 할 만 하다. 돌고 돌아 복수와 폭력의 기원이 사라져버리게 된 기가 막힌 현실을 보여주면서 페킨파는 관객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모험적인 선택을 한다. 폭력에 눈떠가는 주인공 베니 역을 한 워렌 오츠의 개성만점 외모와 연기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재미있는 것은 베니의 직업이 피아니스트, 즉 예술가라는 것이다. 예술가는 이제 소위 현상금 사냥꾼이 되어 누군가의 목을 따기 위해 범죄자들과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한다. 하지만 복수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베니는 한 때는 장엄한 복수의 대상이었으나 이제는 쓸모 없이 목만 남은 가르시아에 대해 연민마저 느낀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딱한 풍경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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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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