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I love myself, I love you!

‘파니 핑크(keiner liebt mich)'의 파니 핑크

● “제 삶이 LP판처럼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전축바늘은 어디쯤 있을까요. 거의 끝? 중간? … 아니면 이미 끝났을까요?” 입 속으로 웅얼댄다. 이곳은 점성술사 오르페오의 집. 죽음은 두렵지만, 나는 언제나 죽음을 생각해왔다. 그래서 관도 하나 짜두었다. 까맣고, 크고, 안락한 내 전용관.
내 이름은 파니 핑크. 매일같이 지역 공항 검색대에서 탑승객들의 짐을 열었다 닫고, 또 열었다 닫고, 또다시 열었다 닫는다. 출근하거나 ‘스스로 결정하는 죽음' 모임에 나가지 않을 때는 혼자 멍하니 턱을 괴고 앉아서 중얼거렸다. ‘나는 강하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 받는다.' 살면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총체가 이 네 문장에 다 들어있었다. 나는 자신감이 필요했고, 사랑하면서 동시에 받고 싶었다. 그래서 연인을 필요로 했는지 모른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날 사랑할 자격도 있는 셈이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는다는 것 자체로 자존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래서 그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다른 이에게서도 사랑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물론 들었다. 솔직히 말해 그 때까지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나는 나에 대해 잘 알지조차 못했고, 그런 까닭에 감정적으로 여러 번 위험한 순간들을 맞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설움에 눈물 흘렸다는 시인 랭보처럼, 결국 나는 내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임을 인정해야 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 자신을 사랑하기가 더 힘들어요.” 나는 기어이 마음에 담고 있던 말을 토로했다.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근거가 너무 약했다. 자신감을 잃다가 목적이 전도되어 남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만 나를 사랑하려고 애썼다.
남자를 끌어들이는 주문은 효력이 없었지만, 그래도 오르페오는 나보다 현명했다. “외계인들에게 끌려 혹성에 갔을 때, 난 한 번 더 사랑해보고 싶다고 했지. 그들은 사랑이 뭔지 모르니까, 날 지구로 되돌려 보내줬어.” 그는 죽음을 앞뒀지만 표류하는 대신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길을 택했다. 나도 오르페오처럼 한 번 더 나를, 타인을 사랑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내가 아닌, 웃고, 뛰고, 호흡하는 나를 느끼고 싶었다. “이 잔에 물이 반쯤 찼나요, 비었나요?” “반쯤 찼죠!” 나는 까맣고, 크고, 안락하지만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해서 성가셨던 관을 창밖으로 던져버렸다. 스물둘, 혹은 스물셋의 나는 파니가 되어 ‘I love myself'와 ‘I love you'사이를 가늠하고 있다. 사랑을 찾는 일이, 이제는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박수진 학생리포터 treetal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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