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딜레마 Dilemma

‘레스키브(L'esquive)'의 크리모와 리디아

그저 얼굴 한 번 보기 위해서, 나는 귀찮게도 먼 길을 돌려 간 적이 있다. 축축한 대기를 뚫고 내 씨디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곡은 넬리의 ‘딜레마’였다. 반복해서 듣다보면 묘하게 오롯해지는 그 멜로디를 들으며, 나는 비에 젖은 거리를 달리고 또 달렸다. 오로지 그의 퇴근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어린 날의 짝사랑은 누구나 한번 겪어봤을 법한 애달픈 기억으로 남곤 한다. 하긴 짝사랑이 서로사랑보다 편한 것도 사실이다. 주는 만큼 기대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마음가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설렘과 긴장감을 누리는 특권을 가질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짝사랑을 과대포장해도 결국 그 기쁨과 희열은 고백의 순간에 와르르 내려앉을 수 있으며, 설렘과 긴장감을 적당하게 유지시키지 못해 늘 애를 먹어야 한다.
크리모는 친구 리디아 때문에 일생에 인연이라곤 없던 연극에 뛰어들었다. 그것도 능력 있는 남자배우를 뇌물로 공략해 주인공을 따내면서. 태어나 처음 하는 연기에, 감정까지 섞인 상대역이 크리모에게 녹록할 리 없다. ‘어쩌다가’ 해버린 키스에 ‘어설프게’ 튀어나온 고백. 당황한 기색의 리디아는 알쏭달쏭한 말만 뱉어낸다. “모르겠어, 좀 더 생각해보고. 어떻게 한번에 대답을 하냐?” 그리고 리디아는 가버렸다. 진짜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예상할 수 없는 그 사람의 대답 때문에, 모든 일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끝없이 그 사람과 마주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그의 모든 말에 갖은 의미를 붙여 이해해버렸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다 훗날 내 쪽팔림의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꼴이었다.
연기에도, 친구에서 연인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에도 어설펐던 크리모는 결국 연극에서 제외된다. 리디아에게선 끝내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마음을 확인하는 일이 아니면 리디아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크리모를 뺀 연극은, 그제야 잘 돌아가 성공적으로 막이 올라가고, 내려갔다. 리디아와 크리모를 둘러싸고 갖은 추측과 비약을 생산해내던 친구들도 모두 아무 일 없던 듯 자연스레 화해하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오직 크리모만 혼자 남았다.
한 때 나는 생각했었다. 진심은 언젠가는 통하는 법이라고.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사랑이란 종종 미수에 그치기도 하는 것이다. 아마 다른 누구의 곁에서 그 역시 그렇게 말했으리라. 진심은 반드시 통하는 법이라고. 어느 노랫말에서처럼,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끝내는 다르게 적힌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를 걸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늘 내 예상과는 다른 말들을 쏟아내기 때문에, 기억이 누구에게나 같은 추억이 되지는 않기에, 크리모는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돌이키기엔 쪽팔리지만 잊혀지기엔 아까운, 우리의 짝사랑은 그래서 당신의 이별보다 서글프다.

박수진 학생리포터 treetalk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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