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With Love, Choc

‘84번가의 연인(84 Charing Cross Road)’의 헬레인과 프랭크

“안녕? 난 촉이에요. 시도 때도 없이 하늘로 뻗쳐있는 내 잔머리를 보고 친구들이 외계와 교신하는 더듬이 같다며 붙여준 별명이에요. 난 내 별명이 썩 마음에 들어요.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 발음하는 것도 좋고, 지금 이렇게 당신과 교신하는 것도 멋진 일이니까요. 어때요, 잘 들리나요?”
지구에는 내가 찾는 사랑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내가 드라마틱한 시츄에이션을 꿈꾸는 로맨티스트인 건 아니다. 또한 나는 염세주의자도, 4차원은 이미 섭렵하고 40차원의 어디쯤을 헤매는 부유(浮遊)적 인간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랑도 그렇고 세상만사 무엇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무지하게 건조한 인간이랄까.
그러던 어느 날, 영화 속에서 헬레인과 프랭크를 본 나는 둘을 사랑의 범주에 넣을 것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사는 아마추어 작가 헬레인은 미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책들을 싸게 사기 위해 런던의 한 책방에 편지를 보낸다. 책방 주인 프랭크는 자기처럼 책을 좋아하고 열정적인 성격을 가진 헬레인을 위해 그녀에게 보낼 책을 구하는 일에 전념한다. 그와 그녀가 서로의 편지를 받는 그 순간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둘은 우리 생각처럼 쉽게 얼굴 한 번 볼 수가 없다. 경제적 이유로 그녀의 런던행이 취소되었다는 편지를 받고 아쉬움 채 못 감춘 표정으로 “She's not coming” 을 읊조리는 그. 온 방에 가득인 책을 바라보며 그로 인해 이 미국 한복판이 영국이었노라 깨닫는 그녀. 그 때 두 사람의 얼굴 위로 언뜻 스쳐간 그것이 사랑인지 규정할 수 없다. 그는 행복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녀는 영국에 갈 수 없었다.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트 투 하트의 궁색한 직송 회선으로 이루어낸 소중한 교감들을 사랑의 일종이라 칭할 수 있다면? 아, 나도 죽기 전에 전송속도 아주 느려터진 회선 하나 개통하고 싶다. 만약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수사는 원점으로. 지구에는 내가 찾는 사랑이 없는 것 같으니 다시 외계와의 교신을 시도하는 수밖에.
“하루가 멀다 하고 그를 보는 것, 한 시간이 멀다 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하는 것. 원하면 지금이라도 볼 수 있고 바라면 언제라도 내일의 만남을 약속할 수 있는 관계에게 주어지는 건 뭘까요. 난 그런 거 하나도 부럽지 않아요. 그런 적 없어요? 나는 가끔 사람보다 나무와 더 이야기가 잘 통하는 걸 느껴요. 그냥 그 곳에서 내가 보내는 교신을 받아줄래요? 나무들처럼, 프랭크처럼 막무가내로 엉켜버린 내 이야기를 이해해 줄 수 있나요? 우주로 갈 돈이 없는 내가 헬레인처럼 당신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사랑을 담아, 촉으로부터.”

손호영 학생리포터 in_azurbl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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