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창백한 파리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사무라이(Le samourai, 1967)’
스무 명의 감독이 연출하고 무려 열 여덟 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영화 ‘사랑해, 파리’는 감독들이 파리 20개 구 중 하나를 택해 5분 내외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게 만든 영화다. 코엔 형제와 구스 반 산트, 거린더 차다, 월터 살레스 등 걸출한 현대 감독들이 포진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파리라는 공간을 감독들이 각자 어떤 방식으로 느끼고 해석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게이 소년이 사랑을 고백하는 마레 지구의 로맨틱한 화랑, 장님 소년과 배우 지망생의 열정적인 사랑이 벌어지는 생 드니의 외곽, 뱀파이어가 출몰하는 한밤의 마들렌 지구 등등 감독들이 바라보는 파리의 특정 공간들은 모두 전혀 다른 의미와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파리는 뉴욕이나 로마와 더불어 영화 속 배경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고 또 특정한 감수성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도 가장 많이 쓰인 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파리를 배경으로 중요한 영화들을 만들었던 감독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선두는 물론 프랑스 영화 감독들이다. 누벨 바그의 선도자였던 고다르와 트뤼포, 에릭 로메 등을 비롯한 많은 감독들이 파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 장 피에르 멜빌의 ‘사무라이’ 또한 넓게 보면 그 중의 한 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부살인업자 제프 코스텔로(알랭 들롱)를 주인공으로 한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태어난 가장 어둡고 음울한 장르인 필름 누아르의 분위기가 극대화된 영화다. 장 피에르 멜빌은 누구도 온전히 믿을 수 없기에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고 절대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그의 삶을 사무라이의 삶에 빗대어 표현한다.
영화 첫 장면에서 텅 빈 방 안에 죽은 듯 누워있는 코스텔로의 모습 뒤로 ‘사무라이보다 더 고독한 존재는 없다. 있다면 정글의 호랑이 정도일까’라는 자막이 흐른다. 가구가 거의 없는건조한 방안에서 단지 새장 속에 단 한 마리의 새만 키우며 사는 코스텔로는 마치 그의 텅 빈 방처럼 표정이 없는 인물이다.
일체의 감정을 배제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수 있는 조건이기에, 그는 모든 사적인 삶을 배제하고 살아간다. 장 피에르 멜빌은 주인공 코스텔로의 삶을 묘사하며 그가 주로 활동하는 파리의 시내 또한 마치그의 방처럼 건조한 톤으로 그린다.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으로 일관하며 바바리 깃을 세우고 중절모를 눌러쓴 코스텔로가 누비는 파리의 골목과 지하철은 그의 고독함을 더욱 가중시키는 역할을한다. 그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공간과도 철저히 유리되어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무라이’에서 그려진 파리는 코스텔로 역을 맡은 알랭 들롱의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얼굴과 닮아있다. 이는 절대절명의 순간에 사람들이 종종 깨닫게 되는 ‘인간은 결국 혼자다’ 라는 서늘한 명제를 상기시킨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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