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나는 신경증 환자

우디 앨런 감독의 ‘맨하탄(Manhattan, 1979)’
카베 자헤디 감독의 ‘나는 섹스중독자’는 일종의 재현된 셀프 다큐멘터리다. 연출과 주연까지 겸하고 있는 자헤디는 세 번째 결혼을 앞두고 20대 시절 섹스 중독이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끊임없는 지적인 수다와 스스로를 대상으로 삼아 웃음과 동시에 삶의 철학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카베 자헤디는 우디 앨런과 닮아 있다. 엉뚱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자기합리화에 열중하고, 때로는 삶의 아이러니에 당황하고 분개하는 우디 앨런은 콤플렉스와 우월감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현대인의 신경증을 몸소 보여준다. 그가 항상 자전적인 영화를 만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몇몇 그의 영화들 속에서 자신에 대한 고백을 듣는 것이란 그리 어렵지 않다. 유명 영화 감독으로 화제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증을 코믹하게 표현한 영화 ‘스타더스트 메모리’, 실제 연인이었던 다이앤 키튼과의 연애담을 신경질적인 두 뉴요커의 사랑을 통해 그린 영화 ‘애니 홀’ 등에서 주인공은 실제 우디 앨런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진정성을 지니고 있다.
우디 앨런의 79년작 ‘맨하탄’은 우디 앨런과 순이의 스캔들을 미리 예언이라도 하는 듯한 줄거리를 지닌 영화다. 코미디 방송 작가이자 소설가 지망생인 42세의 아이작(우디 앨런)은 17세의 고등학생 트레이시와 연애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나이 차이와 어린 트레이시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그녀와의 관계를 완전히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와 비슷한 연배와 지적 성숙도를 지닌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진 아이작은 트레이시에게 작별을 고한다. 아이작은 트레이시와 사귀는 동안 계속해서 트레이시에게 두 사람의 관계는 그저 일시적인 것일 뿐이며 앞으로 많은 남자들을 만나게 되면 너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 25년이라는 나이 차이는 아이작에게 진정한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주지 않는 일종의 편견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트레이시의 사랑을 깨닫고 막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기 위해 달려간다. 6개월의 유학 기간 동안 기다리자는 트레이시의 말에 아이작은 화를 내며 말한다. “6개월 후면 넌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있을 거야!” 그러자 트레이시는 딱하다는 듯 아이작을 바라보며 말한다. “세상에, 아이작. 때론 사람을 좀 믿어 봐요.” 42세의 남자가 열일곱 살 소녀에게 듣는 점잖은 충고는 뜻밖에도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편견을 과감히 벗어날 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순이와 우디 앨런의 스캔들은 이 영화로부터 13년이 지난 후에 일어난 일이지만 십 여 년 동안 잉꼬부부인 둘의 굳건한 애정의 비밀은 바로 이 ‘맨하탄’에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최은영 영화평론가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282&Sfield=&Sstr=&page=2&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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