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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도 푸념이 되지 않게끔 자기의 어려운 처지를 설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위로에 관해 무라카미 류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그래서 많이 지쳐있을 때, 심지어는 자신감을 상실했을 때에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먼저 위로를 구하기란 본래부터 어려운 일이라는 걸 절감하게 해준 문장이었죠. 흘러간 가요가 조근거리며 귀에 감기는 민속주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마주 앉습니다. 아내의 불륜을 알아버린 말년병장 인호와, 옛 애인의 행복한 결혼식을 목도하고 집으로 쓸쓸히 돌아가던 지원이 바로 그들입니다. “제 일상으로 들어와 주세요, 잠시. 그럼 제가 당신 일상으로 들어갈게요. 잠시동안.” 닿을 듯한 거리의 두 사람. 사랑의 감정에서 오는 설렘의 기쁨도, 뜨거운 희열도 없지만 마음보다 몸이 먼저 끌립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다시 만난 인호와 지원은 나란히 누워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의 힘듦을 토로합니다. “나 좀 도와줄래요? 아, 아니요. 아니예요.” 영락없는 지각인생, 30대 초반의 나이에 제대를 앞둔 대학원생 인호.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인호의 문제를 툭툭 짚어주는 지원. 아, 저들처럼 모두가 힘겹게 살고 있구나. 세상에 날 진정으로 위로해 줄 사람은 없는 건가. 이렇게 비통할 데가. 안쓰러운 내 청춘의 자화상을 대하는 씁쓸함,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위안의 정서. 그래요, 당신도 느끼셨군요. 이해 받는 것만큼이나 이해하는 일도 나를 위로하는 좋은 방법이라는걸요. 그래서일까요. 그들의 갯지렁이같은 만남에 일종의 부러운 감정마저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군요. 응원이나 질타보다는 일상적인 언어로 위로를 채우고 싶은 마음. 어쩌면 처음부터 그랬어요. 처음 만난 그 날, 그의 친구이자 그녀의 옛 애인인 남자의 결혼식장에서, 그리고 그 좁디좁은 민속주점에서, 두 사람의 맞닿은 얼굴에 이미 그렇게 써있지 않던가요. 나, 마음이 맞는 누군가를 찾아요. ‘이리 와서 나와 이야기하지 않을래요?’ 라고. 힘겹지만 빠르게. 조심스럽지만 간절하게. 자, 여기는 다시 영화 속. 나란히 침대에 누워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두 사람의 모습.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몰려옵니다. 어느새, 상상 속의 나는 스크린으로 들어가 두 사람 옆에 눕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이제 됐어요. 우린 다 괜찮은 사람들이니까, 어서 편히 쉬어요’ 라고, 그들에게, 또 나에게 말합니다. 위로는 멀지 않아요. 굳이 내 입으로 내 상처를 꺼내지 않더라도, 위로가 필요할 때, 누군가가 내 상처를 알아주는 일만큼 좋은 방법은 내가 누군가의 상처를 알아주는 일이랍니다. 인호와 지원, 그리고 너와 나. 우리 평범한 청춘들의 위로의 치환관계는 이렇게 성립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