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틈을 찾다

아름다운 비행(Fly Away Home)

새로운 환경에 들어선 지 이틀 만에 두려움이 몰려온다. 아니, 두려움은 어쩌면 이틀 전부터 벌써 내 눈앞에 어룽거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새끼손가락을 쓸 그 날이 진짜로 올 줄이야. 나는 오래전부터 나의 무던히도 지루한 일상에 작은 틈이 하나 생겨나 준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왔다. 틈이라는 한음절의 단어는 동경 그 자체였다. 혼자 소설도 써 보았다. 너무나 심심한 한 소설가가 지하철역 벽 사이 틈을 발견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금방이라도 닫혀버릴 것 같은 그 틈을 조금이라도 오래 벌리고 있기 위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나 자신이 새로운 환경에 처한 까닭인지 문득 ‘아름다운 비행’의 에이미가 떠올랐다.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10년 만에 보는 아빠와 당장 함께 살게 된 에이미. 아무것도 그녀에게 친숙한 것은 없다. 어느 날, 그런 그녀에게도 ‘틈’이 찾아온다. 16마리 거위들의 어미가 된 것이다. 에이미의 아빠는 경비행기로 야생 거위들을 이끌어 녀석들을 철새 서식지로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운다. 야생 거위들을 이끌고 비행하며 아빠와 에이미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이 모든 여정은 마크 아이샴의 음악 아래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에이미가 16개의 알을 하나하나 보자기에 감싸는 장면에 흐르는 ‘식스틴 에그스(sixteen eggs)’의 아름다운 첼로 선율은 그녀가 새 삶을 얻는 이 중요한 순간을 더욱 빛나게 한다. 스스로 새장 문을 열고 에이미를 따라 날아오른 거위들과 에이미의 첫 비행 장면 또한 가슴 탁 트이는 음악 ‘퍼스트 플라이트(First Flight)’가 있기에 더욱 벅차오른다. 서식지로 가는 긴 여정의 끝 무렵 아빠의 경비행기가 고장 나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자 그녀는 홀로 비행을 하며 거위들을 이끈다. 영화 초반 교통사고가 나던 장면에 등장했던 메리 채핀 카펜터의 ‘10,000 마일즈(10,000 Miles)’가 다시 흐른다. 드디어 소녀는 극복한 것이다. 상처의 순간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바꾸고, 세상에서 가장 슬프게 들리던 노래를 온전히 자기만의 테마로 만들면서. 영화의 멋진 결말에 비해 내 소설의 결말은 우숩다. 그는 좁은 틈에 끼어 점점 저려오던 손가락을 안간힘을 다해 빼버린다. 나는 내가 소설 속 그처럼 될까봐 겁이 났던 것이다. 처음으로 틈을 꿈꿨을 때부터 두려움은 나를 쫓아다녔음이 분명하다. ‘동경한다’는 말에는 애초에 그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으리라. 이렇게 단언하고 나니 조금은 편해진다. 내가 맞선 그 녀석이 엊그제 처음 태어나 팔팔한 태풍 같은 두려움이 아니라, 너무 오래되어 낡아빠진 살랑바람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종이에 펜 스치는 소리가 들린다. 두 번째 소설이 시작하려나 보다. 한층 미련 용감해진 그가 이번엔 다짜고짜 손바닥을 확 밀어 넣어 버릴 것만 같다.

손호영 학생리포터 in_azurbl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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