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잘하는 설렁탕집을 꼽아보라면 꽤 여러 집을 꼽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最古의 설렁탕집을 꼽아보라면 다들 ‘이문설농탕’을 꼽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헌데 도대체 이문설농탕이 언제부터 개업을 했길래 最古의 설렁탕집이라는 건지 궁금한 노릇이다. 파찌아빠가 인터넷을 뒤져봤더니만 뭉뚱그려서 100년이라고만 표현을 해놨지 정확히 몇 년도에 개업했다는 똑부러진 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해서 신문기사를 중심으로 검색을 해보니 이문설농탕이 개업한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당시에 종로통에서 학교를 다녔던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대략 1902년 부터 1907년 사이’란다. 여하튼 100년이 넘었는지 아직 안 넘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명확하지만 현존하는 最古의 설농탕집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문설농탕은 홍모씨가 개업을 한 후 양모씨를 거쳐 현재의 쥔장의 어머니인 유원석씨가 1960년 부터 맡아오다가 2002년에 작고 하시면서 현재의 쥔장인 전성근씨가 맡게 됐단다.’ 그 동안 이문설농탕은 줄곧 현재의 그 위치에 있었다.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화신백화점이 헐리고 그 자리에 최첨단의 빌딩이 들어섰건만...피맛길이 조각조각 토막 나버려 더 이상 길의 역활을 하지 못하게 되었건만...이웃한 인사동이 문화의 거리에서 상업지로 전락을 했버렸건만 이문설농탕은 개발의 기간 보다 몇 배나 더 긴 세월인 백년간 그 자리에서 우뚝 버티고 서 있는거다. 이쯤되면 1960년 이래로 이문설농탕의 쥔장인 유원석-전성근 母子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들을 그간 적잖히 격었지 싶다. 기회가 닿는다면 현재의 쥔장인 전성근씨와 함께 밤을 지세우면서 그간 지내왔던 세월들을 모두 훑어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간직하는 것으로 일단의 궁금증을 미뤄둘 수 밖에...
“조금 전에 다녀 온 마포옥의 묵직했던 국물과 비교를 하면 여기는 영 아닌데요.”
파찌아빠와 마주보고 앉은 이의 반응이다.
“이문설렁탕을 먼저 먹어줬으면 어땠을까요? 매일 끓여먹는 된장찌개도 각 집 마다 끓여먹는 방법이 제각각이듯이 설렁탕을 우려내는 방법도 제각각입니다. 어느 맛이 딱히 설렁탕의 맛이라고 정의를 내릴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같이 국물이 묵직한 설렁탕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고, 이문설농탕의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입니다. 파찌아빠의 생각으로는 이문설농탕이 위치한 종로란 동네와 마포옥이 위치한 마포나루란 동네가 서로의 맛을 벌려놨다고 봅니다. 서울의 한 복판인 종로통을 드나들던 사람들하고 새우젓과 목재가 드나들던 사대문 밖의 포구에 드나들던 사람들 하고는 같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들의 요구에 따라 그 맛이 서서히 변해 현재에 이르렀을지도 모르겠단 추측입니다. 어찌됐건 파찌아빠는 이문설농탕이 더 서울식 설렁탕이란 의견입니다. 개인적으론 이문설농탕 같이 지라와 쇠머릿고기 등의 잡부위가 섞인 스타일의 설농탕을 선호합니다. ”
“그렇기도 하겠네요. 쇠머리나 내장, 잡뼈 등의 저렴한 부산물을 함께 사용하니 설농탕 가격도 다른 집들에 비해 착할 수도 있겠구요.”
“이문설농탕 같이 오래된 식당들은 맛도 맛이지만 역사적으로도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식당이라는 의견입니다. 그렇다고 박제를 해놓은 동물마냥 박물관으로 보내자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드나들며 설농탕을 먹어줘서 쥔장이 딴 생각을 할 틈을 주지 말자는 뜻 입니다. 그런 뜻에서 건배를 할까요? (쨍~호록! 크흐~)”
두 남자는 이후로도 설농탕에 대한 심층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덩달아 소줏잔도 연거푸 비워졌다.
“(벽에 붙여놓은 메뉴판을 가리키며)근데요. 저런 글씨는 정말 오랫만에 봅니다. 저게 종이에 뺑끼로 써 붙여놓은 메뉴판이죠. 예전엔 유리문에다 직접 써넣곤 했었는데.”
“야! 정말 그렇네요.”
“저런 글씨는 끝이 평평한 평붓으로 쓰더라고요. 아주 잘 쓴 글씨 같습니다.”
“헌데 설농탕, 도가니탕을 써 넣은 글씨하고 그 옆에 안주류를 주욱 써내려간 글씨하고는 쓴 솜씨가 다른 것 같네요.”
두 남자는 설농탕에 대한 심층적인 이야기가 끝나자 이문설농탕의 구석구석을 도마 위에 올려놓곤 시시콜콜 따지기 시작했다. 의자는 어떻고, 테이블은 저쩌고...이 집에 드나들던 단골들은 누구 누구 였으며...등등등 역시 오래된 식당이라 두고두고 곱씹어 먹을만한 안줏감이 무궁무진했다. 두 남자 앞에 놓인 것은 비록 소주 한 병에 설농탕 두 그릇이었지만 두 남자가 먹어준 것은 이문설농탕의 100년간의 세월이었다. ‘꺼억~ 무지 배부르다.’
<파찌아빠>
& 덧 붙이는 말 : 最高의 설농탕집은 아니지만 대대손손 보존할 가치가 있는 老鋪임에는 틀림없다. 부디 전설 속으로 사라지지 말고 오래도록 민중들 틈에서 살아 숨쉬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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