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해석이 되나요]미안해

‘바보들의 행진’의 병태와 영철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말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시시해지는 것이다.” 콧잔등에 면도날 자국이 점점 줄어들수록, 유쾌한 눈빛으로 번화가를 같이 돌아다닐 친구들이 적어질수록, 자신을 향한 미안함이 계속될수록 그 말은 야릇한 짠맛을 더한다. 예고를 무시한 채 갑자기 어른을 맞이한 듯한 기분을 지울 수 없어서 그냥 그렇게 힘들다고 고백하고 싶지만, 상대는 대답할 리 없었다. 스무 살의 나날들은 그렇게 고즈넉이 떠다녔다.
(다시 오지 않을) 스무 살의 초여름, 병태와 영철을 만났다. 훗날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 되어 있을 그들이 마치 거울처럼 낯익었다. 세상을 둘러싼 역겨운 징후들에 침묵으로 반항할 수밖에 없었고, 믿음이란 것을 끊임없이 의심해댔고, 맨정신으로는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나의 꿈을 자랑스레 고백할 수 없었던 그들이 그저 내 모습이라고 믿어도 누구도 손가락질 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들이 사랑한 두 여자 모두 그들을 밀어냈다. 대신 리포트를 써줘도, 친구들 술값을 대신 내줘도, 고맙다는 한 마디 말이 좋아서 술에 떡이 된 상태에서도 병태는 그냥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데이트에서 성냥개비나 쌓고 더듬거리며 말을 하는 영철을 그녀가 마음에 들어할 리 없었다. 자전거에 그녀를 태우고 4차선 도로를 힘차게 밟아봐도 그녀는 결국 버스를 타고 멀어져만 갔다. 첫 사랑이라 그런지 그녀는 그냥 가버렸다.
어느 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 그녀가 던진 어떤 두 마디의 말을 듣고, 믿어지지 않아 친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친구들은 그녀를 잡아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덜컥 믿어버렸다. 잡으라는 말만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몇 번 그녀를 만났지만, 이상하게 말이 헛나온 것 같았다. 플랫폼 앞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집에 오는 길 내내 맥주 한 캔을 생각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내게 연락하지 않는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기에 어쩔 도리가 없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며칠 간 나의 비루함을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되고 싶다’고 한 말에 내가 되어줬으면,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해버릴 그 생각들을 그 땐 떨칠 수 없었다.
병태가 입대하는 날, 취기 속에서 불렀던 이름의 그녀가 찾아와 어렵사리 내밀었던 마음에 입을 맞췄던 것처럼, ‘어쩌면 나도’라는 상상을 하며 그 날 따라 예쁘게 꾸미고 온 그녀의 손을 몰래 훔쳐보았다. 변명을 하자면, 곧 내가 군사훈련을 받게 되리라는 사실에서 오는 조급함 때문이었다. 개같은 세상에 너무 정직하게 진달래가 피니까, 나중에 봄이 오긴 할 것이다. 청춘이라는 이름은 그저 숨죽이며 떠다닌다. 정말 미안하지만, 스물두 살의 나는 나에게 다시 한번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문동명 학생리포터 playamoon@naver.com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267&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