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시간 여행이 가르쳐 준 것
| 테리 길리엄 감독의 ‘시간 도둑들((Time Bandits, 1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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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족스러운 현재를 바꾸기 위해 과거의 선택을 되돌리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영화 ‘언니가 간다’는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이 다루고 있는 커다란 테마 중 하나를 선택하고 있다.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은 도피에 관한 욕구로 이어지며, 그러한 도피를 위해 가장 적당한 행위는 공간 여행이 아닌 시간 여행일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에서 현재의 자신이 싫어서 과거, 혹은 미래로 간 이들은 반드시 어떤 보상을 얻는다. 이는 시간을 거스름으로써 현재를 바꿀 수 있다는 인간의 가장 큰 판타지에 걸맞는 해피엔딩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회한과 후회의 감정은 시간을 되돌리려는 의지로 영화 속에서 표출되곤 한다. 예를 들어 ‘수퍼맨’에서 연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시간을 되돌리는 수퍼맨의 모습은 신이라기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감정을 표현해준다. ‘백 투 더 퓨쳐’에서 주인공은 비록 의도는 아니었을지언정 과거를 바꿈으로써 자신이 바라던 현재를 얻는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과거를 되돌리고 싶은 욕망은 도피이거나, 무책임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시간으로 달아난다고 해서 그 자신의 정체성이 바뀔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테리 길리엄의 81년 작 ‘시간 도둑들’은 여타 할리우드 영화에서 다뤘던 시간 여행과는 좀 다른 의미의 시간 여행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시간 도둑들’에서 주인공은 종횡무진 시간 여행에도 불구하고 결국 불행한 현재의 시간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근미래. 오로지 물질적인 것에만 관심이 있는 부모와 함께 살고 있던 케빈은 우연히 자신의 벽장 속에서 빠져나온 난쟁이들과 함께 시간 여행을 시작한다. 절대자로부터 다른 시간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이 표시된 지도를 훔친 난쟁이들은 시간을 여행하며 도적질을 하고, 케빈은 그들과 함께 중세와 고대, 근대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모험극을 펼친다. ‘시간 도둑들’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난장이와 절대자, 악마의 존재가 그저 동화적인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 속에서 절대자, 곧 신은 마치 커다란 회사의 CEO처럼 그려지며, 난쟁이들은 우연히 기밀 문서를 훔친 말단 사원처럼 묘사된다. 다분히 동화적인 설정에서조차 계급 차별과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며, 고전적인 가치들을 따르려는 케빈은 난쟁이, 절대자, 악마, 혹은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부모 중 누구와도 진정으로 교감하지 못한다. 이후 그가 연출한 80년대가 낳은 불세출의 SF 영화 ‘브라질’의 전초전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현재로 돌아온 케빈이 화재로 부모를 잃고 홀로 남는 것으로 끝난다. 지극히 어두운 이러한 결말은 ‘브라질’로 이어지는, 암울한 현대 사회에 대한 테리 길리엄의 비판적이며 절망적인 비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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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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