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세상의 모든 아침을 위한, 어둠의 연주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세상의 모든 아침’. 어감이 참 좋습니다. 그럴 밖에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한글자 한글자 곱씹어 읊조린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아침은 인간에게 매일 주어지는 마지막 보루 같습니다. 이 영화는 산야에 파묻혀 연주와 작곡에 몰두했던 17세기 프랑스의 전설적인 비올연주가 쌩뜨 꼴롱브와, 그의 제자이자 궁정악단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마렝 마레의 깊은 사연 담은 것으로, 낮은음 내는 첼로의 시조격인 비올라 다 감바라는 악기의 선율로 채워져 있습니다. 꼴롱브는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샤를을 잃고 자신의 몸과 마음, 음악을 작은 오두막에 가둡니다. 그가 시종일관 연주하는, 현을 거칠게 조율하는 듯한 다중음으로 시작해 내내 저음의 걸음을 힘겹게 내딛는 ‘슬픔의 무덤(Les Pleurs)’ 에는 사랑하는 이를 잃음과 동시에 자신의 생까지 잃은 이의 고통이 배어있습니다. 큰 딸 마들린과 함께 연주하는 ‘두대의 비올을 위한 협주곡-귀환(Concert A Deux Violes-Le Retour)’ ‘부드러운 가보트(Gavotte Du Tendre)’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를 품고 있음에도 그에게 잠깐의 위안 같은 것이기에 처량할 뿐입니다.

어느 날 가난을 떨치기 위해 연주를 택한, 야망을 가진 구두장이의 아들 마렝이 그를 찾아옵니다. 마렝을 사랑하게 된 마들린은 그를 오두막 아래로 안내해 몰래 아버지의 연주를 듣게 합니다. 그의 사랑과 아버지의 음악을 맞바꾸던 마들린의 사랑은 결국 비극을 맞게 됩니다. 그의 마음이 너무 쉽게 뒤돌아섰던 거죠. 마렝이 연약한 몸에 마음의 병까지 얻은 그녀의 침상 앞에 자신이 직접 만든 ‘소녀의 꿈(La Reveuse)’을 바치건만, 그녀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딸의 죽음 후 더 깊은 심연으로 빠져든 꼴롱브와, 그가 자신에게 어떠한 음악적 가르침도 주지 않고 죽어버릴까 두려워하던 마렝은 오두막에서 마지막 의식같은 협주를 치르게 됩니다. 짙게 내려앉은 어둠, 촛불 하나로 밝힌 방에서 먼지 쌓인 스승의 비올을 닦아 건넨 제자는 묻습니다. “음악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두 사람의 활이 현 위에 올라 ‘소녀의 꿈’을 뱉어내기 시작합니다. 계속 질문을 반복하던 마렝은 결국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죽은 자를 위해 잔을 남겨야겠죠. 음악은 지친 자를 위한 휴식이죠. 길 잃은 아이를 위한, 구두장이의 망치소리를 잊기 위한, 우리가 태어나기 전 생명도 없고 빛도 없던 때를 위한….” 이들에게 ‘세상의 모든 아침’은 이미 지난 간 것, 죽은 것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을 더 이상 맞을 수 없는 이를 위한 것이 바로 음악이었고요. 음악은 아침이 지난 후 내려앉은 어둠의 몫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아침인가요, 아니면 어둠 속의 연주인가요.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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