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페셜]넌, 왜 살아…?

죽음 앞에서 쓴 ‘생의 맹서’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덕담과는 너무 다른 새해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해해주세요. ‘2006년을 보내고 또 2007년을 살아야 할 이유’를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니까요. 깨끗한 얼굴 한 새 다이어리에 설레는 계획 가득 담기 전에 우리 한 가지 의식, 아니 이벤트를 치르기로 해요. 바로 ‘생의 맹서’. ‘왜 사냐’는 질문 앞에서 방황하던 대학내일 문화팀은 급기야 죽음을 꺼내들었습니다. 누군가는 고통을, 누군가는 기억을, 누군가는 시간을 시작으로 무수히 많은 것들을 발견했어요. 여러분과 함께 올해를 잘 살아가고 싶어서 여기 그 ‘생의 맹서’를 적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의 ‘생의 맹서’는 어떤 것일까 기대하면서요.
그래도 살 수 있다는 것은
21그램 21Grams
산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고난의 연속이다. ‘탄생’은 전 우주의 경이로움인 동시에 ‘죽음’이라는 순간을 향해 내달리는 고된 항해다. 살면서 누구나 좋은 일들만 생기길 바라지만 그 바람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는 인사도 한 해 동안 겪을 두려운 일들에 대한 조촐한 방어막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에 ‘기대’란 건 일찌감치 버리고, 더 상처받지 않으려고, 더 실망하지 않으려고, 무감각해지길 택했다. 사실, 모든 것은 죽음에의 두려움 때문이리라. 극복할 수 없는 한계라면 차라리 받아들이자. 그러자 내 마음은 ‘어차피 누구나 다 죽어’라며 좀처럼 놀랄 것이 없다는 듯, 싸늘한 시선으로 일관했다. 냉소를 달관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러던 중 감독의 유명세로 보게 된 ‘21그램’은 나에게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잃어버렸던 기억을, 느낌을, 나를 돌려놓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사랑스러운 두 딸과 남편을 잃게 된 크리스티나는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던 아버지에게 말한다. “아니에요. 인생은 계속되지 않아요. 내 인생은 끝났어요.” 그리고 리버스에게 절규하며 말한다. 자신은 반신불수라고. 그들이 없는 삶은 팔, 다리가 잘려나간 삶이라고. 가슴이 아팠다.

어릴 적 내가 제일 싫어하던 말 중 하나는, ‘그래도 어쩌겠어. 산 사람은 살아야지’였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는데, 그래도 살아간다니, 그 말을 하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도 싫어하던 그 말을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니 내가 하고 있었다. 인생은 안 그래도 신경 쓸 것이 많아보였다. 그래서 죽은 사람은 안타깝지만, 가쁜 숨을 몰아가며 일일이 마음 쓸 여유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안 썼다. 이미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거다. 죽음에 초연해진 노인도 아닌데, 의학에 무지한 원시인도 아닌데. 분명 나에게도 가족이 죽는 다는 상상만으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내가 냉소주의자가 된 이유는 ‘그래도 살 수 있는 것’이 뭔지도 모르면서 듣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믿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간접경험은 결코 직접경험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지 않아서 이런 단상조차 하지 않았다면 난 이 나이에 벌써 무뎌져 버렸겠지. 남의 고통을 보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같이 나눌 수 없었을 거다. 계속 그렇게 차갑게 식어갔겠지. 그리고는 ‘살다보니 그래 되더라’ 하는 아주 구차한, 변명 같지도 않은 말을 했겠지. 나의 변화를 세월 탓으로 돌리지 말자. 그렇게 되긴 싫다.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j@naver.com
인생이란 폼 나게, 끝까지 가면 그만
달콤한 인생
10여 년 전,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누군가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반으로 가르고, 내 몸보다 마음을 먼저 자라나게 만든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에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처는 흐르는 시간에 묻혀 조금씩 아물어갔다.

죽은 사람에게 가장 미안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 사람과의 기억을 잊어간다는 것이다. 아픔이 서서히 잊혀져가는 만큼 그 사람에 대한 생각과 그리움도 비례해서 줄어든다. 물론 이유는 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으니까. 평생을 그 사람만 부여잡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내게는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상처보다 그 사람이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간다는 것이 더 힘들다. 아파도, 평생을 가슴에 끌어안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이젠 아니다. 자꾸 잊혀져간다. 처음부터 없던 사람 같다. 희미하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너무 미안하다. 더 많이, 더 오래 기억해주지 못해서. 살아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잘 살아간다. 그게 너무 슬프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된 것은 그때부터였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내 눈앞에 있던 사람을 평생 동안 다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생생했던 그 사람과의 시간들이 레테의 강을 건너듯 내 기억 속에서 서서히 망각되어지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면서부터. 그래서 더 악착같이 과거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여기, 이 시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나라는 존재를 아로새기고 싶었다. 계속해서 질퍽거렸다. 억지로라도 그 자리에, 그 시간에 내 흔적들을 하나 둘 남기면서.

바로 그 순간, ‘달콤한 인생’의 선우를 만났다.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다는 얼굴로, 돌이킬 수 없어서 끝까지 폼 나게 거침없이 내달리는 그의 모습은 사실 좀 무서웠다. 온갖 미련을 머금은 얼굴로 앞으로 가기도 뒤로 가기도 무서워 주춤하고 있는 내 모습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결국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겠다던 천상병 시인의 노래처럼 흔적도 없이 떠나버렸다.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여자조차도.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별 볼일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들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갈 뿐이다. 하지만 억지로 멈춰있어서는 안된다고, 잊혀 진다는 것이 두려워 과거를 부여잡고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고, 끝까지 폼 나게 가면 그만인 것이 인생이라고, 선우는 내게 말했다.
안희연 학생리포터 elliott1979@hanmail.net
그곳에 서서 가장 서럽고 가장 기쁘게 울기 위해
업 클로즈 앤 퍼스널 Up Close & Personal
이른 아침 일어나 변기에 앉으면 이상하게도 이런 생각이 밀려오곤 한다. ‘아. 내가 살기로 결심했구나. 그래서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겠구나.’ 또 ‘해피 뉴 이어’에는 할 일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참 오묘하구나. 이렇게 기쁘고, 또 슬플 수도 있구나.’ 김소월 시인의 시 한 구절 ‘찬란한 슬픔’에 따라붙곤 했던 설명, 모순과 역설은 그리도 지겨웠건만 시간이 주는 깨달음은 차마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고리타분한 냄새 풀풀나는 ‘추억’이라는 단어를 이제 내 입으로 말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란 말인가. 얼굴과 마음에 시간을 담기 시작하면 ‘아, 나이를 먹었더니’ 혹은 ‘아, 나이를 먹고보니’로 시작하는 도무지 정 안가는 소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에 멀쩡히 흐르고 있던 시간의 노래, ‘하울의 움직이는 성’ 메인테마 ‘꽃의 정원’을 꺼버렸다. 머리에 일련의 단어들이 줄줄이 소시지 되어 던져졌다. 시간이란, 삶이란, 시든다는 것은, 소멸이란, 죽음이란.

영화는 관객에게 영감을 주고자 어떠한 극적장치를 이용한다. 죽음은 가장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재료 중 하나. 아이디어 고갈 때문인지 이제는 남발되어 고운 눈으로 바라보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으나, 몇 편의 영화에서는 눈물에 씻긴 맑은 눈으로 죽음을 얘기고 있어 참고할 만하다. ‘마이 퍼스트 미스터’의 방황하고 있었던 고어족 소녀 제니퍼는 얼어있던 마음 녹여준 랜달 아저씨의 죽음을 경험한다. 그를 통해 화해하게 된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은 식탁. 환하게 웃으며 제니퍼와 눈 맞추던 그의 모습이 순간 화면에서 사라지고, 제니퍼의 눈엔 눈물이, 입가엔 웃음이 고인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맞은 또 다른 이, ‘업 클로즈 앤 퍼스널’의 뉴스앵커 샐리는 분쟁지역 취재화면을 모니터하다 워렌의 신발을 발견한다. 이어지는 사고 소식. 그녀에게 워렌은 ‘당신이 날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존재의 이유를 알려준 사람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유리잔은 바닥으로 떨어져 날카로운 조각으로 흩어졌으나, 샐리는 아니었다. 워렌이 남긴 것은 그녀를 조각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완전한 하나로 오롯이 설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샐리는 시상식 무대에 서서 그를 추모한다. 그 어느 때보다 빛나는 모습을 하고는. 오랫동안 사랑하며 함께 살았던 남편의 추모식에서 뺨 위로 눈물 흘려보내며 흥겨운 탭댄스를 선보이는 ‘엘리자베스 타운’의 수잔도 같은 모습이다.

시간과 삶이 모이고 쌓이면 죽음이 된다. 죽음은 너에게도, 또 나에게도 생의 순간. 그것도 애써 살아낸 시간 속에서 생겨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무언가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가장 찬란한 순간이다. 나는 그 끝 아닌 끝에 서서 가장 서럽고 가장 기쁘게 울고 싶다. 이것이 내가 모든 지나가는 것들에 견뎌내기 힘든 슬픔이 배어있어도, 살아냄과 동시에 지나가는 이 생을 꿋꿋이 살아가는 이유다.
육진아 기자 yook@naeil.com
대학내일 문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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