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랑페르

L’Enfer
감독 다니스 타노비치
출연 엠마뉴엘 베아르, 카렝 비야, 마리 질랭
장르 드라마
시간 101분
개봉 12월 13일

삶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의 의지일까 아니면 지독한 운명의 굴레일까. 영화 ‘랑페르’는 그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정답이 후자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세 자매는 뿔뿔이 흩어져 서로 연락도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그들 내면에 자리 잡은 지독한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되어 그들의 삶을 유린한다. 첫째 소피(엠마뉴엘 베아르)는 남편의 외도 때문에 질투와 절망의 늪을 헤매고, 둘째 셀린느(카렝 비야)는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홀로 고독하게 살아가며, 셋째 안느(마리 질랭)는 담당교수이자 절친한 친구의 아빠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러던 어느 날 셀린느에게 정체불명의 사내가 접근해온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랑페르’는 프랑스어로 ‘지옥’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세 자매의 마음속 풍경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영화는 현재 그들이 처해있는 지옥과도 같은 삶의 모습을 건조하게 비추는 동시에 과거에 그들이 겪었던 충격적인 사건이 무엇인지를 역으로 추적한다. 감각적인 화면과 정교한 서스펜스, 격동적인 감정들이 활발하게 상호작용하면서 관객을 몰입시키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영화 속에는 수많은 메타포가 등장한다. 우선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은 세 자매들에게 빨강, 파랑, 그린이라는 세 가지 색깔을 각각 부여함으로써 확고한 인물이미지를 구축했다. 또한 만화경을 통해 바라본 현란한 패턴 속에 뻐꾸기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장면을 삽입한 오프닝 시퀀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파리,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악녀 ‘메디아’이야기 등 여러 상징들이 영화 곳곳에 존재하면서 영화의 주제의식을 뒷받침한다.
‘랑페르’는 ‘블루’ ‘화이트’ ‘레드’ 연작시리즈로 유명한 폴란드의 거장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각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유럽예술영화계에서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이 차지하는 명성이 대단한 만큼 이 영화 역시 그의 노련함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애증, 욕망, 질투 같은 무시무시한 감정들이 우리의 내면을 발가벗기는 것만 같아서 괴롭더라도 끝까지 참고 보기를 권한다. 영화가 끝난 뒤엔 분명 감탄을 마지않을 테니.

A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굴레란 바로 이런 것 (희연)
안희연 학생리포터 elliott1979@hanmail.net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203&Sfield=&Sstr=&page=1&cate_news=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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