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관음의 시대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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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은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들이 대중적 반향을 얻기 위해 필요한 쾌락의 중추다.지나치면 사생활 침해라는 범죄와 연결되는 이러한 관음의 욕망은 오늘날 우리 시대에 무감각할 정도로 만연해 있다. 이러한 관음의 욕망이 넘쳐나던 시기는 사실 과거에도 존재했다. 미국의 70년대는 관음의 시대였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도청 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었고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침해가 사회문제화된 시기였다. 소리를 훔친다는 청각적 관음증을 다룬 영화 ‘컨버세이션’에서 도청전문가 해리는 공원에서 채록한 흐릿한 소리 하나를 통해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의 배후를 쫓는다. ‘컨버세이션’의 도청과 감시라는 모티프는 후에 국가적 감시체계의 공포를 다룬 토니 스콧의 스릴러 영화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컨버세이션’의 오프닝 장면은 ‘소리의 도둑질’이라는 영화의 테마를 완벽하게 형상화한 명장면이다. 시선의 위계와 정교한 사운드 편집으로 연출된 이 장면은 ‘도청’이라는 영화의 관심사를 전달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원을 보여주는 버즈 아이 뷰 쇼트(하늘로부터 내려다본 시점화면)로 시작하는 이 장면에서 사운드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첫 소리는 지나치게 작은 볼륨으로 맞춰져 정체가 분간이 안 된다.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 하면서 볼륨은 커지고 소리의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 이 영화의 중심 플롯이 될 것임을 직감하게 만든다. 카메라는 도청전문가인 해리 컬(진 해크먼)을 따라가면서 도청의 희생자인 남녀의 대화내용을 관음적으로 잡아낸다. 실은 대화 내용보다 더 상징적인 것은 이 시퀀스의 끄트머리에 나오는 장면이다. 해리가 도청에 열중하고 있는 도청차량 앞에 두 명의 젊은 여자가 선다. 잔뜩 멋을 낸 그녀들은 바깥에서는 안을 볼 수 없고 안에서는 바깥을 볼 수 있는, 특수유리로 제작된 도청 차량의 창문에 얼굴을 비추고 화장을 고친다. 해리와 또 한 명의 도청 전문가는 유리 앞에서 섹시한 퍼포먼스를 벌이는 그녀들을 훔쳐본다. 안온한 상태에서 관음의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관음의 욕망은‘컨버세이션’을 추동하는 극적 모티프다. 이 영화에서 해리는 도청이라는 청각적 관음증에 중독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숨기며 살아가지만 타인의 사생활을 도둑질하는 데는 익숙하다. 위에 언급한 장면에서처럼 창문 안의 남자들은 창문 바깥의 여자들을 맘껏 훔쳐볼 수 있고 심리적으로 유린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여자들은 관음증에 무방비로 노출된 희생자들이다. ‘컨버세이션’은 청각적 관음증을 통해 인간에게 내재한 음험한 욕망과 대면하게 만든다. 시대와 개인의 병리적 관계에 대한 이처럼 치밀한 메타포는 일찍이 없었던 듯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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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영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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