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음악처럼]빛 좋은 개살구

아메리칸 사이코(American Psycho)

얼마 전, 취업한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서 얘기를 나누다 ‘요즘 삶에 낙이 없다’는 말을 들었어요. 남들이 부러워 할 만 한 직장을 가지고 그런 얘기를 하다니 배부른 소리로 들렸지요.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그럴 만 하다 싶어요. ‘취업’이 목표일 때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받지만 뭔가를 이루기 위해 열중하니까요. 취직을 하고, 일을 배우고, 적응을 하고 나면 다음엔 뭔가요? 통장잔고가 늘어나고 성과가 쌓인 후에는요?
돈도 충분하고 여자친구도 있고 좋은 직장도 있는데,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네요. 명함에 사용된 글씨체와 재질 따위나 따지며 잰 체 하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자신보다 잘 나가고 세련된 명함을 가진 녀석이 참을 수 없어서 죽이는 그는 패트릭 베이트만, 27살, ‘아메리칸 사이코’라고 불리죠. 피 맛을 본 그는 이제 닥치는 대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그러면서 고상한 척은 혼자 다해서 살인을 하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반들을 설명하는데, 대중적인 곡을 희귀음반이라도 되는 양 고양되어 떠들어대죠. 영화에서는 휘트니 휴스턴(Whitney Huston)의 ‘그레이티스트 러브 오브 올(Greatest love of all)’이나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수수디오(Sussudia)’같은 곡들이 흐르지만 사운드트랙앨범엔 실려 있지 않습니다. 실린 음악들은 뉴오더(New Order), 데이빗 보위, 톰 톰 클럽(Tom Tom Club), 도웁(Dope)등의 곡이죠.
그럼, 영화 속 패트릭의 설명 중 하나를 들어볼까요?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Huey Lewis & The News)’는 처음엔 너무 뉴웨이브 적이더니 83년 ‘스포츠(Sports)에선 자기들 색깔을 찾았어. 상업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앨범전체가 완전한 프로의 세계에 오른 거야. 엘비스 코스텔로와 비교되어 왔지만 휴이가 유머도 있고 훨씬 시니컬하지. 최고 명곡은 ‘힙 투 비 스퀘어(Hip to be square)야. 곡이 너무 쉬워서 가사도 안 들리겠지만 들어 줘야돼. 왜냐면 가벼운 느낌이 중요한 게 아니라 트렌드 자체가 중요하거든.’
패트릭은 오로지 껍데기에만 신경 쓰기 때문에 인기 많은 곡들을 따라서 좋아하는 것 뿐 입니다. 그래야 있어 보이거든요. 허영이란 항상 필요 이상의 것을 먹도록 만들지만 아무리 삼켜도 포만감을 느낄 수 없습니다. 비대해진 정신적 공허함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를 한 입에 집어삼킬지도 모릅니다. 그러기 전에 하루 빨리 인생의 낙을 찾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빈 껍데기만 남은 채 트렌드만 쫓는 사람이 될 지도 모릅니다. 그건 안돼죠. 아무렴.

정재은 학생리포터 jmanduj@naver.com


 

http://www.naeilshot.co.kr/news/view.asp?num=2211&Sfield=&Sstr=&page=2&cate_news=movi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