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그 여름, 가장 조용한 골목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남자 흉폭하다( その男,凶暴につき, 1989)’
기타노 다케시의 12번째 연출작 ‘다케시즈’는 전작 ‘자토이치’나 ‘브라더’에서 보여준 장르적인 쾌감이나 드라마의 매력에 기대는 영화가 아니다. 주연인 다케시를 비롯해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1인 2역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와 영화인 기타노 다케시의 분열증을 보여주는, 장자 식으로 말하자면 호접지몽(胡蝶之夢)의 구조를 지닌 영화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배우 오디션을 보지만 매번 떨어지는 말단 인생의 다케시와, 최고의 영화 스타로 군림하는 다케시는 영화 속에서 딱 한 번 조우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생은 점점 하나로 뒤얽히고 그 안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에피소드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고 등장한다.
‘다케시즈’는 드라마와 장르에 관심을 갖기 보다는 ‘움직이는 그림’으로서 영화를 바라보는 다케시의 시선이 강하게 묻어있다. 사실 다케시의 이러한 영화관은 이미 그의 데뷔작 ‘그 남자 흉폭하다’에서부터 예견되었던 것이다. ‘그 남자 흉폭하다’는 비영화인 출신인 다케시의 첫 연출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다케시의 필모그래피 가운데서도 단연 뛰어난 작품에 속한다. 폭력 성향을 누르지 못하는 삐딱한 강력계 형사 아즈마(기타노 다케시)가 경찰과 손을 잡은 거대 마약 조직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비극으로 끝을 맺는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전형적인 경찰 느와르 영화이지만, 다케시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이 곳곳에 묻어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독특한 장면은 영화 초반부 등장하는 범인 검거 장면이다. 범인의 집에 급습한 아즈마를 비롯한 형사들은 극렬하게 저항하는 범인을 놓치고, 맨발로 야구방망이를 들고 도망가는 범인을 쫓아가는 아즈마와 범인 간의 기나긴 추격전이 벌어진다. 다케시는 가장 긴박해야 할 범인 추격전에서 뜻밖에도 히사이시 조의 가장 서정적이고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을 내내 흘려보낸다. 범인이 달아나기 직전 외부에서 대기중이던 한 형사를 야구방망이로 가격하는 끔찍한 장면은 그 부드러운 사운드트랙과 함께 슬로모션으로 보여지고, 뒤이은 아즈마와 범인의 추격전은 한낮의 지극히 한가로운 주택가 골목의 풍경과 히사이시 조의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마치 조깅이라도 하는 듯 유유자적하기만 하다.
가장 긴박한 순간을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평화롭게 그려내는 다케시의 모순된 연출은 그 자체로 대단한 충격을 안겨준다. 이후 ‘소나티네’와 ‘하나비’로 이어지는 그의 느와르는 여전히 폭력적이면서도 서정적이라는 모순된 분위기를 견지하고 있다. 이는 종래 일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다케시만의 독특한 인장이자, 뛰어난 시네아스트의 탄생을 예견하게 하는 영화적 사건이었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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