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의 발견]이상한 정열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멕시코에서 버스 타기(Subida Al Cielo, 1952)’
멕시코 출신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영화다. 개봉과 더불어 마치 ‘해리 포터’ 류의 판타지로 포장되긴 했지만 '판의 미로'는 꿈과 모험을 좇는 대신 냉혹한 현실에 대한 대항 기제로서의 판타지를 그려낸다. 프랑코 독재정권이 승리를 거둔 후 레지스탕스 대원들을 찾기에 혈안이 된 파시스트 비달 대위는 어린 소녀 오필리아가 결코 대항할 수 없는 거대한 악의 현신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오필리아가 목도하는 판타지 세계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오필리아가 은밀하게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이자, 파시즘에 저항하는 유일한 방패이기도 하다. 이러한 판타지에 관한 그의 취향은 그의 국적과도 무관하지 않다.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농락당해 온 제3세계 국가들의 슬픈 운명은 그들의 문화 속에 대항이나 풍자로서의 판타지에 대한 유구한 전통을 심어주었던 것이다.
'판의 미로'는 멕시코 출신의 감독이 스페인 내전에 관해 다루고 있는 영화다. 과거 식민지와 피식민지 관계에 놓여있었던 탓에 같은 언어권에 속해 있는 스페인과 멕시코를 오가며 활동하는 영화인들 또한 적지 않은데, 루이스 부뉴엘은 스페인 출신으로 멕시코에서 절반이 넘는 필모그래피를 채운 위대한 감독이다. 부뉴엘은 특유의 반골 기질로 인해 스페인 정부와 불화를 겪은 후 멕시코 영화계의 제의를 받아 멕시코로 이주해 약 스무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멕시코 시절 그의 영화들은 스페인 시절의 영화들과 온갖 세계영화제를 섭렵한 그의 말년의 영화들에 비하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부뉴엘의 개성이 가장 자유로운 형식으로 드러나는 매력적인 영화들이다. 1952년 작 ‘멕시코에서 버스 타기’에서 부뉴엘은 임종 직전의 어머니의 유언을 집행하기 위해 낡은 버스를 타고 변호사를 모셔오려는 청년 올리베리오의 기이한 모험을 다루고 있다. 약혼녀가 있는 올리베리오는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뇌쇄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마을 처녀 라켈의 유혹으로 인해 갈등한다. 그녀의 노골적인 유혹은 올리베리오에게 죄의식에 찬 욕망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러한 그의 복잡한 심경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올리베리오가 꾸는 백일몽에 가까운 판타지를 통해 드러난다. 그의 백일몽 속에서 어느 순간 버스 안은 나무들로 가득 한 정글로 변하고 라켈과 그 단 둘 만이 버스에 있다. 그 정글 속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지만, 비참한 표정의 신부드레스를 입은 약혼녀가 곧바로 등장한다. 이러한 코믹한 판타지는 위선과 욕망의 이중적인 행태에 대한 부뉴엘의 코멘트이자, 그의 이후 영화들의 주제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초이기도 하다. ‘멕시코에서 버스 타기'는 초저예산과 엉성한 특수효과에도 불구하고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매혹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부뉴엘의 초현실주의 세계는 현실과 맞닿은 꿈을 보여주는 성숙한 거장의 면모다.
최은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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