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생일은 행복한 날도 특별한 날도 아니다. 언제부터일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다. 나이 따위 기호에 지나지 않는다.
- 40쪽
- 책은 좋아하면서, 정작 사지는 않는단 말이야, 아오이는. 마빈은 종종 이상스럽게 여긴다. - 읽고 싶을 뿐이지, 갖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 49쪽
한 시간쯤 지나자 비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고, 부슬부슬 빗방울이 떨어졌다. 흙 냄새가 물씬 났다. 책을 덮고, 나는 잠시 그 자리에서 비를 바라보았다. 뽀얀 연둣빛 목련 잎을 한잎 한잎 적시는 비.
- 57쪽
두오모. 물건을 사러 버스를 타고 나갔다가 창문으로 그 곳이 보일 때면, 순간 가슴을 스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조그맣게 메말라 아주아주 멀다. 거의 점처럼 보인다. 겨우 점처럼만 보이는데, 그것은 내 안에서 살아 숨쉰다. - 59쪽
아가타 쥰세이는, 내 인생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터무니없는 무엇이다. 그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먼 옛날 학생 시절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 무엇이다.
- 97쪽
.. 웃는다. 떠든다. 걷는다. 생각한다. 먹는다. 그린다. 찾는다. 쳐다본다. 달린다. 노래한다. 그린다. 배운다. 쥰세이는 동사의 보고였다. 만진다. 사랑한다. 가르친다. 외출한다. 본다. 사랑한다. 느낀다. 슬퍼한다. 사랑한다. 화를 낸다. 사랑한다.사랑한다. 더욱 사랑한다. 운다. 상처 입는다. -108쪽
아무것도 하지 않음의 나쁜 점은, 기억이 뒤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꼼짝않고 있으면 기억도 꼼짝않는다 -139쪽
나는 희미한 짜증을 느낀다. 용서받고 있음에 대한 짜증, 상처를 주고 있음에 대한 짜증. 나는 마빈에게 일상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다.
-185쪽
" 사람의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210쪽
고독할 때, 친절과 우정은 고독을 더욱 조장한다. 겨울은 기억을 소생시키는 계절이다. -213쪽
언어가 기호 같았다. 기호이기에, 그렇게 쉽사리 입어서 미끄러져 나오는 것이리라. 소중한 것은 무엇 하나 말하지 못한 채.
-2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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