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도박이라고나 할까, 아마도 나 홀로 기억하고 있을 어떤 약속에 유래하는 것이다. 아직도 아오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 10쪽
인간이란 잊으려 하면 할수록 잊지 못하는 동물이다. 망각에는 특별한 노력 따위는 필요도 없는 것이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새로운 일들 따윈, 거의 모두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잊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게 보통이다...기억이란 덧없는 아지랑이의 날개처럼 햇살 아래 녹아 내려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 11쪽
나는 이미 그녀가 죽어버렸다고 믿으려 했다.- 13쪽
그녀가 보려 하는 것을 같이 보고 싶은 바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녀에게 좀더 다가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물 같은 여자였다 - 41쪽
사람이란 살아온 날들의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소중한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고, 난 믿고 있다.
- 42쪽
우리는 언제든 어제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 어제는 조금 전이지만 내일은 영원히 혼을 뻗칠 수 없는 저편에 있다.
- 44쪽
" 약속은 미래야. 추억은 과거. 추억과 약속은 의미가 전혀 다르겠지." " 희망이 적건, 고통스럽건, 가능성이 제로가 아닌 한 포기해선 안 돼."
- 50쪽
사랑이라는 말 그 자체가, 전형적인 사기 수법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 63쪽
누구에게도,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살아가는 과정에 어두운 그림자 한둘은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 90쪽
모르잖니, 미래 일은. 그러니까, 오늘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약속해줘. 오늘의 이 마음을 언제까지고 간직하고 싶으니까. 약속하는거야. 내 서른 살 생일날, 쿠폴라에서 기다려 주는 거야.
- 99쪽
평소 그렇게 차갑게 보이는 아오이가 목을 길게 빼고 나를 기다려 주는 것이 너무 기뻤다, 야아!하고 내가 나무 뒤에서 얼굴을 내밀면, 나도 금방 왔어, 하고 아무렇기도 않은 표정으로 앞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냉정 속에 열정을 숨기고 걸어가는 듯한... -132쪽
내 서른 살 생일날, 피렌체 두오모, 쿠폴라 위에서 만나. 어때?-134쪽
사람의 마음이란 이렇게 번잡하다. 마음이라는 부분이 육체의 어디에 붙어 있는지 모르는 탓도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지만, 어깨나 발목의 아픔과는 달리 어떻게 처리할 길이 없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나는 가슴에 생채기를 내는 아픔을 그냥 그 대로 내버려두고 있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흘러가는 시간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과거를 잊게 해 주리라 기원하면서..
-142쪽
아니 그것은 가벼움이 아니라, 오히려 무거움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너무 무거워서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158쪽
슈-, 그 소리는 단순한 회선 노이즈가 아니라, 저편에서 내리는 빗소리 같았다....아오이라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 없었다. -169쪽
다음 날부터, 나는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172쪽
그래서 온 힘을 기울여 그녀를 사랑하고, 그 때문에 너무 힘이 들어가 사랑이 도를 넘어 버렸다. 서둘지 말라고, 늘 냉정한 그 사람의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179쪽
헤어진지 7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만 점점 더 그녀는 내 마음속 에서 존재감을 더해 갈 뿐이었다.
-188쪽
과거밖에 없는 인생도 있다. 잊을 수 없는 시간만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이 서글픈 일이라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뒤쫓는 인생이라고 쓸데없는 인생은 아니다.
-206쪽
죽고 싶을 만큼 사랑하는데, 그대에게 다가갈 모든 길은 막혀 있으니, 나는 한 그루 나무가 될 수밖에...
-208쪽
그렇지만 나는 아오이를 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사내답지 못하다 해도, 그것이 나라는 존재의 삶의 방식이니 어쩔 수 없다.
-223쪽
너무도 길게 느껴지는 기다리는 시간, 그것은 깨달음의 시간이기도 하다. 기다림의 저 앞에 기다림을 받아들이는 현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에 몸을 담근다. 그리고 나의 경우, 그것은 8년이라는 긴 시간이었다. -229쪽
바람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귀는 그리운 그 감촉을 확실히 느끼고, 또 기억하고 있었다.
-234쪽
감정의 둑이 터지면서 한숨이 밀려 나왔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과거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내가 비로소 지금이라는 현실을 보려하고 있다.-237쪽
남자란 과거를 질질 끌며 살아가는 동물이라고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의 스위치를 전환하는 데는 여자보다 훨씬 서툰 것 같다.
-243쪽
어느쪽에도 그림을 복원시킬 만한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움만 간직한 냉정한 동창회와도 같았다. -245쪽
열정이 냉정에 떠밀려 가는 것 같았다. 그것은 이 세상의 밤이 아침에게 떠밀려 사라지는 것과도 같았다.
-249쪽
두려움과 불안과 망설임 때문에 모든 것을 향해 등을 돌려 버리면, 새로운 기회는 싹이 잘려 다시는 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못할 것이다. 후회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2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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