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일 따라 쓰는 빨간 머리 앤 - 따뜻한 영어 필사 힐링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 다온북스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최근 한강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알았다. 사람들이 왜 필사라는 걸 하는지 말이다. 그냥 한번 읽고 지나가는 독서와는 다르게 필사는 내가 손에 필기구를 들고 한 글자씩 적어야 하고 그 기록이 남는다. 더 오래도록 기억하는 법이다. 그래서 이 책에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주어진 삶은 비록 비참했을지 몰라도 처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라도 밝고 명랑하고 굳세게 살아가려고 했던 앤의 이야기가 담긴 필사책이다.
오디오북으로 듣고 듣고 또 들어서 그 성우의 목소리를 따라할 정도로 열심히 들었던 이야기다. 그래도 글자로 보는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 도서관에 꽂힌 열 권의 앤 시리즈를 보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언젠가는 저 열권을 모두 읽으리하면서 눈독만 들여두었다. 읽을 책이 없거나 너무 마음이 울적해 저 바닥까지 치닫는 날이 오면 그때가 바로 앤을 읽을 날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 책의 특징은 필사 책인것도 있지만 영어 필사라는 것이다. 번역서를 읽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주는 것이 바로 원서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원서 그대로 일을 수 있는 한국 사람은 행복한 것과 동일하다. 원서라고 생각하면 막연히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더구나 이 책은 앤의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부분만 딱 50개로 추려 놓아서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니 원서 읽기에 도전해봐도 좋겠다.
오래 전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영어 필기체를 배웠던 기억이 났다. 요즘은 아예 그런 것이 없는 듯 하지만 오래전 귀국하고 난 후 나를 가르쳤던 선생의 편지를 받았을 때 그의 괴팍한 아니 괴발개발인 글씨체를 보면서 수업 시간에 내 노트에 적어준 건 정말 잘 써준 것이구나를 인정해야 했다. 그런 느낌으로 필기체로 문장을 써본다. 너무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u,v,w의 끝선 처리가 미흡한 것이 눈에 보이고 r의 연결점도 이상한 듯이 보여 다 쓰고 난 후 틀린 부분만 다시 한번 적어본다. 재미있다. 상당히 진한 젤펜으로 썼는데도 뒤에 비침이 조금도 없어서 필사에 적합한 종이를 썼음을 알게 된다.
딱 오십 개의 장면을 통해서 앤을 다시 읽어볼 참이다. 언제 써도 좋지만 왠지 비 오는 날 펜을 들고 이 책을 펴고 싶어진다. 토독토독 소리를 들으며 앤 역할을 했던 성우의 활기찼던 목소리를 연상하며 적어본다면 더 신이 날 듯 하다. 올 장마는 길다는데 장마가 끝났을 때쯤엔 이 책의 오십 번째 이야기를 볼 수 있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