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둔색환시행 - 온다 리쿠

둔색환시행
온다 리쿠 지음, 이정민 옮김 / 시공사 / 2024년 11월

작품은 작가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책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작가들도 물론 존재하겠으나 비슷한 느낌으로 죽 이어지는 작가도 있다.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는 에쿠니 가오리와 온다 리쿠다. 어떤 이야기를 읽어도 처음 그 느낌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오리의 경우에는 네이비 컬러의 짙고 푸른 바탕이 늘 내려 앉았다. 표지의 색감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느낌이 그러하다. 어떤 이야기를 읽어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온다 리쿠의 경우에는 마치 꿈같은 느낌이다. 글자로 되어 있는 것을 분명 읽고 있음애도 불구하고 발이 땅에 닿지 않고 둥둥 떠 있는 느낌이랄까. 명확하게 주제가 제시되어 있고 소재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야기라도 그러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온다 리쿠의 경우 더 확실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면 좀체 시작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이번 이야기는 제목부터 모호한 느낌을 준다. 둔색환시행. 발음도 어려운 이 단어가 주는 뜻은 무엇일까. 구글 번역기를 켜보니 환상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둔색이라는 뜻이 환상이라는 것일까. 온다 리쿠를 나타내는 가장 적확한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제목에 비해 이야기는 비교적 명확하다. 2주간의 크루즈 여행을 통해서 그곳에 한데 모인 관계자들이 '밤이 끝나는 곳'이라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눈다는 내용이다. 책의 내용은 세 명의 엄마를 둔 아이의 이야기다. 낳아준 엄마는 정신이 온전치 않고 키워준 엄마는 비뚤어져 있으며 표면상의 엄마는 체면 치레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신뢰할 수 없는 엄마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이 주된 내용일 것이다.

이 소설이 뭐 그리 중요할까 하지만 그 소설이 가진 특성 때문에 특징이 생겨 버렸다. 영상화를 하려고 할 때마다 사건이 일어나서 엎어진 그런 소설이다. 소설이 영상화 되다 엎어지는 일이 한두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뭐 그리 대수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출판사에서는 판권이 팔렸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지만 정작 드라마나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다 떠나고 난 이후일 때도 많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는 소리다. 각색도 해야 하고 배우 캐스팅도 해야 하고 그 외 장소 섭외라던가 기타 등등 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한 두달에 뚝딱 하고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책을 재미있게 읽은 경우 이것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보일까 하는 궁금증이 물론 생기기는 하지만.

이 '밤이 끝나는 곳'이라는 책의 경우는 조금은 더 특이하다. 그냥 엎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사고가 생겨서 찍은 필름들이 다 사장되어 버리는 것이다. 각색가가 자살을 하는가 하면 조연 배우들이 함께 죽음을 맞이하고 거기다 카메라 감독까지 죽었기에 더욱 미스터리한 책이 되어 버렸고 저주받은 소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이 붙은 것이다. 이제 작가 고즈에는 관계자들을 한꺼번에 모아 놓고 취재를 하려고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쓰려는 것이다. 픽션이 될지 논픽션이 될지도 아직 정하지 않았다. 그저 기회가 있었기에 그것을 잡고자 했을 뿐이다. 감독, 배우, 편집자, 프로듀서,평론가, 만화가 등 소설과 관련된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는 이 기회는 다양한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던가. 그러니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는 아까운 법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온다 리쿠의 소설을 읽으면서 무언가 큰 사건을 기대한 것은 아니다. 시종일관 잔잔히 흘러가는 이야기는 내가 이들과 함께 크루즈를 타고 2주간 여행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처음에는 단체로 모여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 다음에는 개별 인터뷰를 통해서 알지 못했던 사건들의 뒷 이야기를 알아낸다. 그렇게 하면서 고즈에는 자신의 남편의 전처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밤이 끝나는 곳'의 이야기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아마 그녀는 이 여행을 통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아무리 깊은 어둠이 틈탄 밤이라 할 지라도 언젠가는 밤이 끝나고 아침이 찾아온다. 2주간의 여행을 밤이라고 한다면 그 이후 육지에 돌아온 것을 아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말도 많고 사건도 많았던 그 소설은 만화로 그리고 연극으로 다시 제작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역시도 저주받은 작품이라는 불명예를 떨쳐낼 수 없을까. 그것이 궁금해진다.그리고 온다 리쿠의 작품은 여전히 내게 몽롱하다 꿈같고 환상같다.

[서평]엘리펀트 헤드 - 시라이 도모유키

엘리펀트 헤드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4년 10월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그리고 아무도 죽지 않았다. 명탐정의 창자. 명탐정의 제물까지 작가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그리 만만하게 덤빌만한 책은 아니다. 그만큼 독하고 악하고 편하게 읽히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세상에 이런 이상한 놈들만 가득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현실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소설 속에서나 이런 기이함들을 즐기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수 밖에.

자신의 집을 감시하는 누군가를 본 기사야마. 기사야마는 정신과 의사로 배우로 활약하는 아내와 정체를 가린 채 인기 있는 가수로 활약하는 큰딸 그리고 작은 딸이 있다. 너무 일이 잘 풀릴 때 사람들은 의외로 긴장을 한다고 하던가 자신에게 불행이 닥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 여기 기사야마도 그러한 계통에 속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며 자신의 평안함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처단하려고 한다. 그러니 앞서 자신의 집을 감시하는 인간도 어쩌면 그런 처단 대상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

초반부 이야기는 무슨 추리소설 갚다. 상담을 하면서 환자가 이야기하는 것을 허투로 넘기지 않은 기사야마. 그는 자신의 기지를 발휘해서 환자를 위험에서 구해낸다. 마치 홈즈와도 같은 추리력을 발휘해서다. 그래서 그가 그런 히어로이고 이 이야기는 기사야마가 환자를 보며서 사건을 풀어가는 것인가 했다. 예상은 어김없이 무너졌다. 이것은 그렇게 만만한 소설이 아닌 것이다.

딸이 데려온다는 남자친구를 맞이하는 날.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이 또한 그가 자초한 일이지만 자신의 행복했던 가정은 와르르 풍비박산 나버렸다. 이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마약 시스마. 약효가 발휘되면 엄청나다는 하지만 그 효과가 나타날 확률은 반반이라는 그 약이다. 그는 자금 와서 못해볼 것은 없다는 그런 심산으로 약을 주입했다. 그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약을 맞은 기시야마는 자신이 경험했던 그날로 돌아갔다. 그 다음에 벌어질 일도 누가 다음에 어떤 말을 할 것인지도 다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불행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지만 사실 이 불행의 시작은 그보다 더 이전이었다. 그렇다면 다시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시스마를 맞아야 하는 결론이 되는 것인가. 시스마는 무한정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 계산으로 봤을 때 딱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의 선택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사이코패스같은 기시야마의 일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어떻게 보면 시스마라는 것을 이용해서 타입슬립과도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어떻게 보면 잔인하기 그지 없는 그러면서 호러적인 느낌을 담고 있는 뭐라 하나로 퉁쳐버릴 수 없는 그런 애매한 장르의 이야기다. 기시야마의 기이한 행보의 끝이 어딘지 궁금해서 계속 그를 따라서 돌고 도는 이야기를 따라간다. 남에게 숨기고자 하는 비밀의 끝은 또 어디인가. 결국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정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은 배제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장을 덮는다. 하지만 여기서 끝낼 수가 없다. 이 기이함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책장을 연다.

[서평]아이 윌 파인드 유 - 할런 코벤

아이 윌 파인드 유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4년 10월

레이첼이 보게 된 단 한 장의 사진이 시발점이었다. 만약 그녀가 그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대충 무심히 중심되는 인물만 보고 넘겼다면 보고도 그럴 리 없다는 생각으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는 아이대로 그곳이 자신의 집인 줄 알고 그 사람이 자신의 아빠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았을 것이고 대신 데이비드는 아들을 죽였다는 기억에도 없는 기록을 가진 채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았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어디에서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일까.

데이비드는 감옥에 있다. 5년 전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혐의였다. 자신은 그런 일이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고 그것을 보았다는 증인이 나오면서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나아가버렸고 결국은 감옥행이었다. 물론 아이의 엄마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셰릴과는 이혼을 했고 그렇게 평생을 보낼 줄 알았을 것이다. 모든 면회를 거부한 시점에는 말이다.

5년 만에 찾아온 전 처제 즉 셰릴의 동생인 레이첼은 그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준다. 자신의 아들인 매슈를 찍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배경에 나온 그 아이는 죽었다는 매슈와 똑같이 생겼다. 세살 때 죽었다던 매슈가 이제 여덟살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니 성장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경우에는 죽은 아이가 어떻게 살아서 놀이공원이라는 대중적인 장소에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면 데이비드는 억울한 누명을 쓴 것이 되니 말이다. 자, 이제 데에비드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제목이 어느 정도 힌트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너를 찾을 거다 라는 영어 문장. 아빠가 자신의 아들을 찾기 위해서 내내 중얼거릴 수 있는 표현이 아닐까. 이야기는 어디 한 군데 꼬임없이 일직선으로 죽죽 나아간다. 어떻게 보면 할런 코벤의 소설 가운데서도 가장 굴곡이 없는 변주가 없는 반전도 없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그런 이야기가 지루할 지도 모른다는 편견은 넣어두어도 좋을 것 같다. 할런 코벤 아닌가. 탈출을 계획한 데이비드를 따라가며 오직 하나의 목표만을 놓고 가는 이야기는 그를 잡으려는 반대편의 사람이 있어 더욱 목을 조여온다.

데이비드를 잡기 위해서 출동한 FBI콤비의 대사들이 티키타카가 합이 잘 어우러진다. 보통 이런 이야기에서는 요원들이 상대편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인공을 잡으려고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약간 다르다. 맥스와 세라.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그들은 합을 맞춰 데이비드를 잡으려고 하지만 정도만을 추구하는 세라와는 다르게 맥스는 이 사건에서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해낸다. 그가 발견한 것을 데이비드에게 있어서 도움이 될까 아니면 절망이 될까.

[100자평] 대온실 수리 보고서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재미있다 재미있다 참 재미있다. 너무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이야기. 무조건 읽으라고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

[서평]대온실 수리 보고서 - 김금희

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복자에게. 내가 혼자 읽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지도 모를 순문학소설이다. 같이 읽기로 읽고나서야 알았다. 순문학도 장르문학만큼 재미난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장르소설을 읽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범인이 누구였는지 잘 잊는다. 그것이 내가 잔인한 소설을 보면서도 계속 읽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그에 반해 이런 문학소설들은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는다. 범인이 누군지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가 아닌 주인공이 나오고 그 주인공의 인생이나 그외 다른 이벤트 등이 발생하기 때문이려나.

김금희 작가의 이름을 보는 순간 복자에게가 생각이 났고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띠지에 적혀 있는 문구에 눈이 간다. 이토록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야기. 그 말에 공감한다. 누구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그 말에 동의할 수 밖에 없다. 홀로그램이 들어가서 무지개빛이 아른거리는 표지의 온실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다.

어떻게 보면 그냥 평이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석모도에서 사는 영두라는 여자가 은혜의 소개를 받아서 창경궁 안의 대온실을 수리하는 일을 보고서로 작성한다는 이야기. 제목에서부터 떡하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런 평범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김금희 작가의 자료조사와 맛깔나는 문장으로 엮여지면 세상 재미나는 이야기가 된다. 영두라는 아이가 섬에서 나와 서울 하숙집에서 혼자 생활하게 된 이야기 하며 그러다 친구였던 은혜랑 갈라졌던 이야기, 그러다가 또 대온실을 수리하는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러 자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부분을 내포하고 있어서 그 나름대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영두의 어린시절부터 살아온 이야기와 동시에 지금 같이 온실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일도 있어서 오피스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그런 부분들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분명 웃음이 지어질 그런 부분들이다. 예전에 건축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있었던 것 같은데 나는 이 이야기가 드라마화 되기를 바라본다.

온실의 수리는 그렇게 녹록치 않다. 원래 역사적 배경이 있는 장소이다 보니 그냥 마구잡이로 내가 하고픈 대로 건축사나 의뢰자 마음대로 지을 수가 없는 것이다. 기존에 거기 있었던 틀을 유지도 해야 하고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지도 알아야 하고 이래저래 걸리는 것이 많은 작업이다. 일종의 문화유산을 되살려내는 작업이라고 해야 할까. 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창경궁에는 동물원이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그곳도 한번 갔던 것 같기도 한데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에는 남아있지 않다. 엄마가 있다면 물어보고 싶은데.

은혜의 딸인 산아와 영두의 에피소드도 소소한 재미다. 이모라 부르면서 영두를 따르는 아이는 엄마인 은혜보다 오히려 영두와 더 친한듯이 보이기도 한다. 스스럼 없이 지내는 그런 모습들이 편안함을 안겨준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가 다 편안함만 안겨주면 그것 또한 재미가 없지 않은가. 온실 일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사건들이 발생을 한다. 그 옛날 창경궁에서 원예 작업이 있었을 때의 담당자도 그리 평탄한 삶을 보내지는 않았다. 그때 당시 포도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면서 글을 읽어가는 내내 포도가 먹고 싶어졌다. 영두가 작성해야 하는 대온실 수리 보고서는 완벽하게 마무리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