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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 - 개정판
아거 지음 / KONG / 2025년 5월
평점 :
필명으로 책을 내는 작가의 이름을 볼 때면 생각한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그것이 책의 내용과 크게 관련이 없긴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을 좋아한다. 조금은 더 감정이입을 하면서 작가의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 글을 썼을까를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뉘앙스로만 보면 남자 같긴 한데 비천무의 문장을 보는 순간 여자인가 라는 생각을 했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란 책제목을 보는 순간 아거 작가는 여자라는 확신을 했었다. 그러다가 좋은 아빠와 좋은 남편이라는 글자에 응? 하면서 다시 보았다. 나만의 편견이란. 남자라고 꼭 그 책들을 읽지 말라는 법은 없는데. 여자라고 꼭 그 책들을 읽으라는 법은 없는데 말이다. 나만 하더라도 비천무는 책이 나오고 아주 오랜 후에 읽었고 아르미안의 네 딸들은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같은 책을 세월을 두고 다시 읽어본 사람은 안다. 같은 책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나이에 따라서 자신의 삶에 따라서 얼마나 다르게 느껴지는지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상실의 시대]가 그러했고 [반짝반짝 빛나는]이 그러했다. 이십대의 그리고 삼십대의 느낌이 너무나도 달랐다. 어디 책만 그럴까. 음악도 마찬가지다. 같은 음악이라 하더라도 세월의 무게가 쌓인 후에 듣는 음악은 다르게 느껴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걸까. 내가 이 책을 두고 몇 년이 지난 후 읽는다면 여기 나온 문장들 중에서 다르게 느껴지는 문장이 분명 있으리라.
여러 책 중에서 작가가 탐했던 문장들에 관한 기록이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감상들이 아니 들어갈 수가 없겠다. 내가 읽었던 책이라면 이런 문장에서 작가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면서 공감하기도 또는 나는 다른 문장에서 이런 생각을 했는데 라면서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읽었던 책이라 유난히 반갑기도 하다. 여기에서 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요네스뵈이 [데빌스 스타]라는 책을 봤을 때 더욱 그러했다.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7년의 밤]이 그러하다. 내가 읽어보지 않았던 책이라면 이 한 문장에 꽂혀서 전체의 책을 읽어보고 싶게 되기도 한다. 몇몇 책들은 읽어볼 책 리스트에 적어 두었다. 윤대녕 작가의 책이 그러하다.
솔직히 조금은 감성적인 부분도 두드러지게 느껴져서 나처럼 감성이 조금 메마른 사람들은 동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헤어진 사람아 부디 잘 살아다오 라는 문장이 그러하다. 지금은 조금 덜 하다고 느끼지만 -아니 그럴 수도 있다 - 예전의 나는 칼 같았다. 나에게 맞지 않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더이상 만나기 싫은 사람이라면 칼 같이 선을 그어 잘라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헤어진 사람이라고 별다르랴. 그쪽이 잘 살던지 말던지 그건 내 알바 아닌 걸. 그래서 이 문장이 나오는 책의 전부를 읽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작가는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다른 글이긴 하지만 나 또한 잊지 않기 위해 포스팅을 하고 있다. 내가 읽었던 책들을 잊지 않기 위해.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는지 나는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같은 목적 다른 글인 셈이다. 아니 같은 글이지만 공개적이냐 사적이냐가 다른 점이려나. 이런 식의 다이제스트 형식의 글들은 책의 가지를 치는데 적당하다. 쳐 내는 것이 아니라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읽고 싶은 책들이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