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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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하게 이층집에 살고 싶었다. 동그랗게 창을 낸 다락방 같은 그런 이층방에 나만의 서재를 꾸며놓고 싶었다. 빨강머리의 앤이 살던 그린 게이블즈의 그런 집을 가지고 싶었다. 하늘을 향해 창문을 만들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하면 그대로 맞는 느낌을 받고 싶었고 날이 좋은 날에는 별을 보면서 잠들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이사를 다니면서 그런 생각은 사치요 꿈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다. 현실은 아파트일 뿐이었다. 그것도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는. 언젠가 나만의 집을 가질 날이 오면 나는 이층집을 꿈꿀까. 아니 현실에 이미 적응해버린 지금은 단지 아파트가 살기 편하고 좋을 뿐이다.


나와는 다르게 다다시는 그렇게 이사를 많이 다니지 않은 편이다. 이제 막 세번째 이사를 감행하려고 하고 있다. 다른 이사와는 다르게 자신의 물건만 빠져나오는 기이한 이사. 나 또한 그런 이사를 해봤기에 그의 느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남들보다 더 개인적으로 말이다. 


자신이 일부러 주장했던 가구들까지 모두 놓고 나오는 지금 그는 어떤 집을 택할까. 조용하고 인적이 드물고 공원이 있는 그런 집을 원했다. 운은 아직 그를 버리지 않았을까. 마침 미국으로 살러가는 할머니가 계셨고 2년간 세를 한번에 주는 것으로 집을 얻었다. 이제는 자신의 마음에 들게 집을 고쳐볼 때이다. 


(미국으로 이사를 간 할머니는 빅서에 살고있는 친구에게로 놀러 간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빅서에서 온 남부장군]이라는 책을 연상하게 된다. 신기한 일이다. 같은 지명이라니.)


곱등이가 수백마리 천장에 달려있고 벌레가 나오고 칠이 떨어지는 할머니가 살고 계신 오래된 집을 연상하면 딱 맞을듯한 그런 집. 굳이 다다시는 왜 그런 집을 고집했던 것일까. 그가 하나씩 집을 고쳐가는 과정을 보면 이해는 된다. 


또한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자신이 즐거워서 한다면 굳이 반대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가 그런 집을 얻었기 때문에 예전에 헤어졌던 가나와도 다시 만나게 되지 않았는가. 결국엔 사람 때문에 헤어졌지만 결국엔 사람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그닥 큰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 채 이야기는 잔잔히 지속된다. 전작에서도 집을 짓는 일을 주된 소재로 삼았던 작가는 이번에도 집을 소재로 삼아서 리모델링을 주로 하는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전작에서 사각거리는 연필소리가 기억난다면 이번 이야기 속에서는 특정한 소리 대신에 풀 냄새가 난다. 상쾌한 숲속의 공기 같은 것이 이미지로 남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혼자 사는 다다시는 충분히 우아하게 보일 것이다. 굳이 음식을 하지 않아도 먹을수 있는 것이 많은 혼자만의 삶이지만 다다시는 커다란 식탁을 가져다 놓고 자신만의 음식을 해 먹는다. 그 자체로도 그의 삶은 충분히 우아하다. 자신은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지만. 내가 혼자서 살게 된다면 나는 그처럼 우아한 사람을 살 수 있을까. 


-내일 아침은 버터를 듬뿍 바른 하얀 식빵에 계란 프라이, 온야채 샐러드. 밀크티가 제일 맛있는 계절이 돼서 기쁘다. 점심은 갓을 넣은 볶음밥에 꿀에 절인 매실 장아찌. 계란탕 나버머지. 저녁은 가나가 가르쳐준 주점까지 걸어가서 파와 뱅어 샐러드, 새끼 양고기 구이, 돌김 리조토를 먹자.(14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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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8-03-16 11:52   좋아요 0 | URL
잘 읽고가요! 나난 님!^^

나난 2018-04-26 11:13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그장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