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귄의 소설에서 가장 먼저 접하게 된 것이 <어스시의 마법사>, <아투안의 지하 무덤>이었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읽은 것이 바로 <빼앗긴 자들>이다. 솔직히 르귄의 SF라는 장르에 있어 작가의 인지도나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는 하나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지난날 읽었던 글들이 가지고 있던 따스함과 독특함을 기억하고 읽었을 뿐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은 여전히 기분좋음으로 남아있다.책을 꽤나 빨리 읽는 편이라 자부하는데, 이 책은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책이 재미가 없어서라든가 어렵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책 속으로 빠져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주인공인 셰벡, 그를 무엇이라 불러야할까? 혁명을 꿈꾸는 반란자? 혹은 자유를 갈망하는 이상주의자? 그의 표현대로... 또 다른 세계의 오도니안? 매 순간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깨어있으려 하는 그의 영혼이 차마 가련하기까지 했다. 그는 평범하지 못했다. 그건 그의 재능이 특출나서도 그의 용모나 행동거지나 두드러져서도 아니었다. 그는 타협하지 못하는 자였다. 아니, 그는 지독하게 개인주의적이었다. 관료주의와 자본주의를 오가며 그 현실을 인지하는 것은 셰벡이 맞지만 그는 혁명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친구들의 몫일 것이다.그래서 책을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셰벡을 통해서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는 무엇일까? 정체해버린 두 세계의 통교를 셰벡이라는 물리학자를 통해서 얻으려하는 것일까? 나는 이 책에서 '유토피아'의 환상과 냄새는 맡지 못했다. 나의 통찰력이 부족해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셰벡 자신이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았기에.그래서 나는 <빼앗긴 자들>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풍요로움을 빼앗긴 아나레스와 자유를 빼앗긴 우라스. 그들 누구도 완전하게 행복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가 현재의 그들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울 빼앗긴 자들이다. 그리고 셰벡은 그들의 가운데서 그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단절과 벽을 허물고 서로에게 부족한 것들을 찾으라고. 서로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굳어져버린 체제에 대한 체념에서 벗어나라고. 오직 바라고 희망하고 멈추지 않는 자만이 빼앗긴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